4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요12:12-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이튿날에는(유월절 닷세 전날입니다)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요12:12"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출23:14유대인은 3대 명절을 철저히 지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 아무 데서나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지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죄를 인하여 여로보암을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입니까? 절기 때에도 예루살렘에 못 가게 하려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기를 그곳에서 지키라고 한 죄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게 된 결정적인 죄가 바로 여로보암의 죄였습니다.
포로 시대에 에스라에 의해서 율법 교육을 철저히 받게 된 유대인들은 절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지켰습니다. 그래서 절기가 되면 세계도처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붐비게 됩니다. 이렇게 절기를 지키러 온 큰 무리들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요12:13-16예수님은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하루를 쉬시다가 다음 날 두 제자를 보내어 나귀 새끼를 구해 오도록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21:6-9종려나무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호산나는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요7:10예수님의 사역하셨던 3년간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한 번도 자신의 신분을 공적으로 드러내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귀신같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막3:11-12"그들이 (변화)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막9:9본 것 :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본 것,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16:28형제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큰일을 하기를 바란다면 왜 숨어 다니십니까? 스스로 정체를 밝히고 당당하게 밝히세요’라며 빈정거렸을 때에도, 예수님은 ‘나의 때는 아직도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열 두 제자를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만 자신을 밝히 드러내셨을 뿐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지금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신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심으로 자신이 성경이 예언한 다윗의 자손이요, 평화의 왕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요12:16이것만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5:39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이것이 성경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눅24:44-47지금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연한 죽음이 아닙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26:53-54"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요18:6이와같이 얼마든지 피하실 수 있는 능력있는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에 반드시 하셔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고 외칠 때에도 그들의 입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삼사 일 후면 그들 중 대부분이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폭도로 변한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들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영접하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공적으로 당당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자마자 어린아이들까지 합세해서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고 소리쳤습니다. 그것을 보고 분노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따지고 들었습니다. “당신, 저 소리 못 들어요?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도록 내버려 둡니까?”
그때 예수님은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21:16"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눅19:40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요, 인류의 왕이시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그를 환호하지 아니하면 돌이라도 소리를 지르도록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태도를 바꾸셨을까요? 성경에서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 스가랴 하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 선지자가 자신의 예언서에 예수님에 관해 예언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12:15이 말씀은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이라는 구약 성경에서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읽는 슥9:9절과 비교하면 조금 표현이 다르기는 하지만, 의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가룟 유다가 군병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렸을 때 예수님께서 그 귀를 붙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26:53-54이와같이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거셨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예언하신 말씀 가운데 ‘메시아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왕으로서 입성하신다’는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공포 분위기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도를 바꾸신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며칠 후면 십자가에서 처형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로마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2-34당시 세계 최대 강국은 로마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로마 정부가 파송한 총독 빌라도를 위시한 많은 지도자들과 유대의 대제사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부하로부터 “예수라는 사람이 지금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데 모든 백성들이 그를 향해서 ‘호산나 이스라엘 왕이시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 보고를 받은 빌라도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는 주제에 왕이라고?”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누가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는 분을 인류가 기다리는 왕이요 구원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엄숙하게 선언하십니다.
“예수만이 진정한 왕이요, 인류의 구원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시기 전에, 특별히 자기를 죽이는 유대 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에게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으로 자신이 모든 예언자들이 예언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일 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고 죽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처형하는 것입니다. 의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 두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드려 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을 때 잠잠하셨지만 한 가지 만은 확실히 밝히셨습니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죽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