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12:7-11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12:7-8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영적 통찰력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꿰뚫어 보십니다. 우리의 헌금하는 동기, 봉사하는 동기, 교회 오는 동기를 예수님이 꿰뚫어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아셨지만, 가룟 유다를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만 두어라. 나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추가돼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고, 잘 섬기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때때로 마르다 혹은 가룟 유다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고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고 섬길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런 사람은 눈앞에 이익이 없으면 비난합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자신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으면 버립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아로 유대 나라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키시면, 자기도 뭔가 한자리 할 것을 기대했는데,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하니까, 당장에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렸습니다.
눈 앞의 이익,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찾다가 불행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26:24가룟 유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사죄의 은총, 풍성한 천국의 삶, 천국 자녀의 신분, 영생 등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예수님을 따르며 헌신했던 마리아는 만세에 복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26:13"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요12:9예수님이 베다니 소재 시몬의 집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큰 무리의 유대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신다는 말 한마디가 많은 유대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든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는 즉시 체포하라는 명령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을 잡으려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은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파다하게 퍼졌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 ‘과연 죽은 자를 살리신 사람이 누구일까?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본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보려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체포해 보려는 사람들 모두가 베다니 시몬의 집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가 9절 말씀 후반부에 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나사로가 누구입니까? 베다니에 여동생들과 살던 청년. 갑자기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죽었던 그 청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덤에 오셔서 나사로야 나오라 외치시니 죽은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이 장면을 나사로의 장례식에 왔던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자기 집, 마을로 돌아가서 소문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죽은 지 나흘이 된 사람이 살아날 수 있어?”
흥분이 되어서 호기심에 몰려왔지만 예수님에 대하여서도 나사로의 간증에 대하여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운동 경기장에 가보십시오. 항상 경기 선수보다도 구경꾼이 더 많이 있습니다. 선수들은 진땀을 뺍니다 긴장하고 흥분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까? 하며 온몸을 던져서 싸우고 힘을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은 편안합니다. 땀 흘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판단합니다. ‘이 선수는 잘하고 저 선수는 못하네.. ’ 각기 자기 주관을 가지고 심판자가 됩니다. 자기가 하면 그렇게도 못하면서도 말로는 선수입니다. 신앙 생활할 때에도 구경꾼처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12:10-11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다가 제거하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나사로까지 없애려고 합니다.
살인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우발적으로 살인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과실치사, 즉 과실에 의한 살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연을 가장한 의도적인 살인이 대부분입니다. (고의, 미필적 고의, 인식 있는 과실이냐?)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둔 사건들의 이면에는 대부분 음모가 있습니다. 그런 어둔 사건들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일반인들을 모르고 있지만, 뒤편에는 음모를 모의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예수님과 나사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의한 결과는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가르쳤던 사두개파에게 나사로의 부활은 자신들의 교리적 기반을 와해시킬 수 있고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기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기들의 잘못된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나사로까지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거짓의 사람은 이처럼 점점 더 큰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중국 청나라 말기 만주에 장센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우소푸웨이 테’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의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노름꾼에다가 호색한이었고, 도둑이었으며, 심지어 자기의 아내와 고명딸까지 집에서 내쫓을 정도로 가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중년이 되어 시력이 점점 나빠지더니 결국 양쪽 눈을 다 실명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천벌을 받아서 그렇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어느 날 장센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원에 가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병원을 찾아간 장센은 극적으로 시력의 일부가 회복되었습니다. 장센은 여기서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장센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이제 자신도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면서 선교사님에게 세례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돌아가서 이웃들에게 당신이 변화되었다고 말하시오. 얼마 후 우리가 방문할 그때까지 당신이 주님을 따르고 있다면 기꺼이 세례를 주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장센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육신의 쾌락을 좇던 이기적인 그의 눈이 참회의 눈물로 씻기고 거룩하신 예수님을 주목하기 시작하자 ‘우소푸웨이 테’라고 손가락질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섯 달이 지난 후, 장센이 살고 있던 마을에 도착한 선교사님들은 수백명의 새로운 신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장센은 나머지 시력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주니께로 인도했습니다. 소경 전도자 장센은 복음을 전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도 받았습니다. 욕을 얻어먹고 침 뱉음을 당하고 사나운 개에게 쫓기면서도 오직 주님을 주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센이 청코우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의화 단원들이 그 근처의 차오양에서 약 50여명의 성도들을 붙잡아 처형을 하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 죽여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장센이 살아 있는 한 그리스도인이 자꾸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장센을 데려오면 50명을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미리 피신시켜 동굴에 숨어 있던 장센은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을 위해 대신 죽으셨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들을 대신해서 기꺼이 죽으려 결심했습니다. 장센은 자진하여 출두했고 지방 관원들은 그를 우상 앞으로 끌고 가서 절을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센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자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예배한다고 대답하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장센은 단칼에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장센은 거룩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마르다 입니까? 마리아 입니까? 아니면 나사로 입니까? 구경꾼입니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결단하고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4월 20일 오전 6: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