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18-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모든 성경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5:46모세가 기록한 모세 5경을 포함한 모든 구약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안이 열리지 않았을 때에는 구약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리면 구약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책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1:1"원복음이라고 합니다."
창3:15을"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여자의 후손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어야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 여자의 후손은 단 한분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난 사람은 있어도 아버지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잉태하신 여자의 후손이셨던 것입니다.
"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홍수로 심판하십니다. 이 홍수 심판으로 코로 호흡을 하는 모든 사람과 생물이 다 죽었는데 살아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사람과 생물입니다. 착하고 의롭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주에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방주가 누구입니까? 예수님"
창6:5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십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레위기 23장을 보면 절기가 나오는데 무교절 기간 중 안식 후 첫날에 그 땅의 첫 열매를 거두어 초실절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
성막, 제사 모든 것이 예수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경은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 즉 예수님의 탄생, 성장, 고난과 죽음, 부활, 승천, 재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고난과 십자가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7마, 막, 누가복음의 1/3 이상, 요한복음은 무려 1/2을 할애하여 고난 주간의 일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주간에 당하신 고난이 어떤 것입니까?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27:26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마27:29-30가시 면류관 : 가시는 저주의 열매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침 뱉음을 당하심 : 수치와 모욕 (우리의 죄로 인한)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27:35못 박히심 : 골2:14-15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나무 십자가 : 저주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21:23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나무에 달리셨습니까? 목메어 달아 죽일 수도 있고, 칼로 목을 쳐서 죽일 수도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3:13-14발가벗기심 : 우리의 수치 담당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요19:19-20죄 패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 히브리어, 로마, 헬라 말로 기록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16:15-16피와 물을 쏟으심 :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피 :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9:22아담의 아들 아벨로부터 예배자들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벨이 이 진리를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제사에는 생명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서, 양의 첫 새끼를 잡아 드렸습니다.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피의 제물을 바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4:3-5그 선례를 따른 자들의 줄은 아주 깁니다. 아브라함. 모세, 기드온, 삼손, 사울, 다윗 - 그들은 죄 용서에는 피 흘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줄은 십자가에서 끝이 납니다. 아벨이 시작한 일을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물로 드려진 후로 더 이상 제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9:11-14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고, 십자가는 제단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히10:10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가 갚아야 할 죄의 값을 그 분이 갚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 분이 하셨습니다. 죄 없는 피가 필요했기에 예수님의 무죄한 피가 바쳐짐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단번에 영원히 속죄되었습니다.
질문: 단번에 영원이 제물이 바쳐졌다면 다시 제물을 바칠 필요가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위치적으로 성화되었습니다. (위치적 성화)
우리가 의로와 진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흘리심은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온전히 깨끗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물은 무엇을 나타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한 번 마시면 다시 목마르는 우물 속의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하는 물로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그 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십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7:37-39물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피를 다 쏟아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변화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2-13현대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가 그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여러분은 늘 내가 가르치는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따라 주었습니다. 그러니 비록 내가 떠나 있더라도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에 더욱더 힘써 주기 바랍니다. 지극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에는 손을 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순종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빌2:12-13구원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극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에는 손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좀 더 실제적으로 말해, 이웃을 사랑하고 험담을 삼가야 합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부부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 첫날보다 더 부부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결혼 50년이 지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산전수전 다 겪고 높은 산, 깊
은 골짜기도 지날 만큼 지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금혼식을 지낸 부부라면 배우자가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알고 배우자 대신 음식도 주문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겉모습도 닮아 갑니다. 결혼 첫 날에 비해 결혼 50년 때가 더 부부이지 않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혼인 신고서는 그날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관계는 자랐습니다.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엄격히 따져 부부의 부부됨은 시간이 흐른다고 예식장을 떠나는 순간보다 더 완전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친밀한 정도로 보면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릅니다.
결혼은 완성된 시간이자 하루 하루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미 한 일이기도 하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도 같습니다. 세월이 간다고 처음 구원받은 날보다 더 구원받은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원에서 자라 갈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결혼처럼 구원도 완성된 사건이면서 동시에 하루 하루 개발하는 것입니다.
피는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재물입니다.
물은 우리를 거룩케 하기 위한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다 필요합니다. 요한은 그 우리에게 그 사실을 꼭 알리려고 했습니다. 무엇이 나왔는지를 아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곧 (동시에)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
요한은 하나를 다른 것보다 더 강조하지 않습니다. 피는 받아들이지만 물은 간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은 받고 싶지만 변화는 원치 않습니다. 물은 받아들이지만 피는 간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바쁘지만 그리스도와 화목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는지요?
구원의 확신이 충천해 섬김의 삶은 딴전입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구원받는 즉시 불러가지 않으실까요? 사실 여러분과 제가 여기에 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삶과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의 성향은 혹 반대입니까? 구원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이런 저런 봉사로 동분서주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피를 살짝 덮어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피를 가려주는 피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없애줍니다.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여러분과 제가 천국에 서서 상을 받을 때에도 오직 한 분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의 죄를 다 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경주를 하십시오. 여러분의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승이신 성령님께 코치를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