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23-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길은 ‘비아 돌로로사’ 즉 슬픔의 길이라고 합니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갈보리로 가신 길이 바로 그 길이었다고 합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신 분은 알 수 있듯이, 그 길은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 수없이 매를 맞고,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이 넘어지며, 쓰러지며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고난의 길입니다. 바로 그 길에 의해서 우리 인류의 운명은 바뀌게 됩니다.
신앙에도 개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주님에게 더 끌리고, 어떤 사람은 부활의 주님에게 더 끌리고, 어떤 사람은 재림하시는 주님에게 더 끌립니다. 그러나 똑같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것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재림이 모두가 다 대단한 사건이요, 우리에게 큰 복음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솟아오르는 샘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런 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출발하는 샘이 있습니다. 은혜에도 샘이 있습니다. 모든 은혜는 그 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전제하지 아니하는 예수님의 탄생,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예수님의 부활,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취급하는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이야기,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우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복음의 핵심이요, 은혜의 샘입니다. 모든 은혜는 여기서부터 흐르기 때문에 주목해야 합니다.
구약에 에스겔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바벨론에 끌려가서 일평생 포로 생활을 했는데, 그가 성령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환상 중에 성령께서 그를 인도한 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는데, 해 돋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성전 문 쪽에 와서 보니 문지방에서 샘이 솟아오릅니다. 아주 맑은 물이 솟아오릅니다.
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그가 그 물길을 따라서 가 보았더니 가면 갈수록 물이 자꾸 불어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차더니 무릎까지 올라오고 나중에는 허리까지 찹니다. 좀 더 가다보니 헤엄을 치지 아니하면 안 되는 큰 강을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십니까?
성령의 생수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7:37-39"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2:33여러분 은혜의 샘, 성령의 생수는 십자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의 뜻은 십자가에서부터 은혜의 샘이 솟아오르기 시작해서 부활의 언덕을 넘어 은혜의 강이 되어 세상 땅 끝까지 풍성하게 넘치도록 흐르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혜는 십자가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항상 십자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흔히 복음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일대기가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4복음서를 주의해서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인 고난 주간, 십자가, 죽음 등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깊은 감동에 젖게 하는 한 주간의 사건이 몇 가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신약과 구약에서 중요한 것 한 가지씩만 말해 본다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한 주간과 요한복음 12장 이하에 나오는 고난주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일주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어떤 면에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엄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면 창조의 웅장함과 신비를 다는 알지 못하지만 황홀함과 놀라움으로 인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 요한복음 12장 이하에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한 주간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쓰는 요한복음의 전체 분량 중 거의 2분의 1을 할애해서 이 한 주간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3년 156주 중 155주에 있었던 이야기를 11장에 할애했는대, 마지막 한 주간의 이야기를 10장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니까 성령님이) 마지막 한 주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가늠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마태와 마가, 누가도 자기들이 쓴 복음서의 30퍼센트 이상을 이 마지막 한 주간의 사건을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복음서 모두가 예수님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십자가의 고난을 중심에 두고 다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비하면 사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탄생이나 부활, 승천과 같은 기사는 이상하리만큼 간략하게 다루고 넘어가 버립니다.
어느 주석가는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복음서란 무엇인가? 복음서란 예수님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에 관한 모든 사건과 말씀을 기록한 연대기요, 그 나머지 모든 부분은 서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이요, 은혜의 근원이요, 샘이 됩니다. 바울도 그가 복음을 이야기할 때에 '십자가의 도'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2-24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부활을 등한히 했다거나 예수님의 승천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모르는 부활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진하게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의 신앙생활에는 누수현상이 심하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모든 은혜의 샘이요, 복음의 핵심이요, 복음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 세 가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1십자가는 우리 대신 치르신 고통의 대가지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곳이 바로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23절을 보시면 간단한 말씀이 나옵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를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의 형이 얼마나 잔인하며,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새삼스럽게 여기에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고통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약 시대에 미리 내다보고 예언한 다윗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습니다. 내 모든 뼈는 다 어그러졌습니다. 내 마음은 촛밀 같이 녹아 내렸습니다. 내 힘은 질그릇 같이 말랐습니다. 내 혀는 이틀에 붙었습니다.'(시22:14) 더 이상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그 고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내가 받을 고통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인에게는 형벌이 따라옵니다. 형벌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만약 우리의 죄 값을 그대로 받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을 피할 수 없고, 그 형벌에는 무서운 지옥의 고통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을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실 훗날을 내다보면서 이사야서 53장 5절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왜 찔렸습니까? 예수님이 왜 상했습니까? 예수님이 왜 징계를 받았습니까? 내가 받아야 될 징계입니다. 내가 받아야 될 고통입니다. 내가 받아야 될 아픔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대신 져주신 것입니다.
2십자가는 우리의 수치를 담당한 대가 지불입니다.
23절에 계속해서 중요한 말씀이 또 하나 나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에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서 네 깃으로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발가벗겼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그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참혹한 수치와 모멸과 모욕을 당하셨는지 모릅니다. 매질을 당했습니다. 얼굴엔 사람들이 뱉은 가래침이 묻고, 뺨을 맞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나중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처량했는지 다윗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22:6그러므로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가 가져다준 수치를 다 제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수치와 모욕을 다 담당하시므로 우리를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다시 세워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는 여호수아 5장 9절의 말씀대로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놀라운 십자가를 우리가 어떻게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3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현장입니다.
30절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원히 돌아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하시고'는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구약에 예언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일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히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 의롭다 하실 수 있는 명분을 다 완전하고 충분하게 주님이 갖추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완전하고 충분한 구원의 길을 우리 주님이 닦아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는 다 이루어 주신 현장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신앙 선배들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 앞에서 그들의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십자가 곁에서 떠나지 않기를 사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 왜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내가 왜 죄인이라고 하는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잘 깨닫지 못하는 분이 행여나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십자가의 길을 한 번 따라가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죄 없는 분이 양손과 발에 못이 박혀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그 갈보리 언덕으로 한 번 올라가 보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그분의 얼굴을 우러러보십시오. 당신이 왜 구원받아야 할 사람인지 해답을 얻을 것입니다. 당신이 왜 죄인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