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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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12: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요12:2

거기서 – 1절 말씀에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는 구절을 보면 나사로의 집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머무신 곳은 나사로의 집이 아닙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따르면,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던 시몬의 집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가셨고, 그곳으로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시몬의 집에 모인 이유가 2절 말씀에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잔치가 시몬의 집에서 열렸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시몬은 문둥병을 고침 받은 감동이 있고, 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나 더 깊은 감동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심방하시고, 그들은 예수님을 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시몬의 집에서 잔치가 있기 전에 이미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체포 명령과 잔치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베다니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2절 말씀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각 사람들의 위치입니다. 마르다는 잔치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12:3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 그들 모두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위치는 다릅니다. 마르다는 일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은 사람들 중에 있었으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밀착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영적 교훈과 마리아의 영적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있을 만큼 영적 통찰력이 뛰어났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거리를 둔 채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주님과 밀착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나사로의 사건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때도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않으세요? 마리아에게 저를 도우라고 말씀하세요.’ 마르다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한 가지 일만 해도 족하다. 마리아는 좋은 일을 택했으니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고 달려갔습니다. ‘주여, 조금만 일찍 오셨더라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동생 마리아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얘기해 마리아가 급히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앞서 11장 32절 말씀에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로 다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이야기했고, 마리아는 먼저 엎드려 경배한 후에 이야기했습니다.

세 가지 사건에서 마리아는 모두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상태로 주님과 거리를 두지 않고 밀착해 있었습니다. 여기에 영적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 있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예수님과 거리를 두지 말고 밀착해 있어야 합니다. 멀리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예배, 찬송, 기도할 때 주님께 밀착해야 합니다. 철야, 새벽 기도하며 전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단 그 시간만큼은 주님과 밀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생각하도록 자신의 삶을 주님께 밀착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통찰력입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을 성경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양에 밀착시키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과 거리를 두지 않는 것이 시험에 빠지지 않는 비결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이 잡히신 밤에 멀찍이 따라가다가 시험에 들어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밀착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극히 비싼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장면을 교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장면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여인들은 결혼을 위하여 혼숫감으로 향유를 예비합니다. 그런데 그 혼수감으로 준비했던 향유를 예수님께 다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 가격이 자그마치 300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유대 여인들에게 머리털을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고전 11:15 “긴 머리는 여자의 영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머리털로, 노예가 하는 일인 발을 씻겨 드리는 헌신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향유를 붓는 장면, 머리털로 발을 씻는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요, 가장 헌신적인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헌신을 가능케 한 뿌리가 무엇일까요? 매우 많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평소 베다니에 자주 오시던 예수님에게서 말씀을 경청해 들었습니다.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은혜의 과정을 거치며 마리아는 마침내 예수님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은혜 위에 은혜가 넘친 여인이 되었습니다.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은 여인이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300데나리온의 향유가 엄청나게 보였지만, 은혜를 충만히 받은 마리아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아깝지만, 마리아가 볼 때에는 기쁨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넘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누가 하나님을 잘 섬깁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는 받은 사람이 섬기는 것과,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섬기는 것은 다릅니다. 은혜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기도를 보고 지나치게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열심을 보고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헌금을 보고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다 아까워 보이고, 지나치게 보이고,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섬기는 봉사, 바치는 시간, 드리는 예물이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도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은혜 받지 않고 헌금을 하면 아니니아와 삽비라처럼 헌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속이게 됩니다. 풍성할 수 없습니다. 인색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헌신하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향유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악취가 너무 많이 납니다. 좋은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가 어두워져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자가 적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가 강한 교회입니까? 하나님께 은혜를 충만히 받은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를 살리고, 이 사회를 살리고, 이 국가를 살리는 원동력이 됩니다.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주여, 은혜 받고 향유 냄새를 풍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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