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1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 지금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이 세상 죄를 짊어지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 이후로 1,500년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이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무려 9가지 재앙(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을 내렸으나,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지막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재앙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람이건 생축이건 애굽에서 처음난 것을 멸하실 때 어린 양을 취하여,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이 그대로 행하였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않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출12:29-34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때로부터 무려 1,500년간 유월절을 지켜왔으나, 유월절 어린양이 실제로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월삭 (매월 초하루) 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2:16-17요즘에도 개신교회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유월절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자가 있습니다. 주로 이단들의 주장입니다. 그들의 말이 맞나요? 아닙니다.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단들이 그렇게 폄론하는 이유? 유월절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해야 이단의 교주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의 학정에서 구원받은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애굽의 바로와 같은 악한 원수 마귀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찬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요12:7나의 장례할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알고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중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마20:17-19그래서 유월절 엿새 전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5리) 베다니에 이르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깊은 감동에 젖게 하는 한 주간의 사건이 몇 가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신약과 구약에서 중요한 것 한 가지씩만 말해 본다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의 한 주간과 요한복음 12장 이하에 나오는 고난주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께서 일주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어떤 면에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엄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면 창조의 웅장함과 신비를 다는 알지 못하지만 황홀함과 놀라움으로 인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2장 이하에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한 주간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유월절 엿새 전에’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 날로부터 시작해서 금요일까지의 육일 동안의 사건이 12장 이하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쓰는 요한복음의 전체 분량 중 거의 2분의 1을 할애해서 이 한 주간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3년 156주 중 155주에 있었던 이야기를 11장에 할애했는대, 마지막 한 주간의 이야기를 10장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니까 성령님이) 마지막 한 주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가늠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마태와 마가, 누가도 자기들이 쓴 복음서의 30퍼센트 이상을 이 마지막 한 주간의 사건을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복음서 기자들이 하나 같이 이 한 주간을 이렇게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결정적인 진리가 이 한 주간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3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중 우리 모두에게 친근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인물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요, 돈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도 아니고, 상류층 여인도 아닙니다. 마리아는 오히려 매우 낮은 계층의 사람이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3남매만 모여 사는 가난한 결손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더구나 요11장을 보니까 그 가정의 희망이었던 오라비 나사로가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위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의 가정은 결손가정이었고, 또 오라비의 죽음을 맞아야 했던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마리아의 집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풍파, 모든 시험을 등에 지고 가는 것 같은 그러한 모습의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렇게 큰 시험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마리아의 가정에 예수님이 찾아 가시고 그 분이 은혜를 부어주니까 이 가정만큼 큰 은혜를 맛본 가정도 없더란 말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아무리 큰 시험과 환난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은혜가 부어지기만 하면 그 모든 시험과 어려움이 복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희망과 부활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가난도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주리는 것도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우는 자도 복이 됩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모든 것이 복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