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요11:53-5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11:53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음모가 있습니다. 정말 우연히 이뤄진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연을 가장한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기막힌 음모일수록 더욱 우연을 가장합니다.
예수님의 처형 뒤에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조직적인 음모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 것인가 하고 여러 각도로 고심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대중을 선동하고 총독 빌라도에게 협박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영적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54절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요11:54예수님께서 험악한 분위기에서 한 발 물러나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강하게 대응하실 것을 기대하겠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방법을 택하신 것은 십자가라는 중요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투쟁하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투쟁, 혁명은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아셨습니다. 십자가로 사랑, 용서, 복음의 혁명이 일어날 것을 아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갔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55절 말씀을 봅니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요11:55예수님이 에브라임에 계신 동안에 유월절이 다가 왔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공생애 세 번째의 유월절입니다.(2:13,6:4) 요한은 예수님 공생애에 지키신 유월절을 해마다 언급합니다. 유월절과 예수님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유월절은 과거 애굽에서 구원받았던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이스라엘을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의 재앙을 차례로 내리셨습니다. 그 마지막 재앙은 장자심판이었습니다. 애굽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도 장자는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죽음이 임하기 전날 밤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 안에 머물러 있으라. 과연 그날 밤에 어린 양의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의 집에는 죽음이 다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장자들은 모조리 죽었습니다. 바로의 아들까지!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마침내 해방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켰습니다. 유월이라는 말은 그냥 통과해버린다, 지나쳐버린다(passover)는 말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 양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살아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유월절은 누룩 없는 떡을 먹는 한 주간의 무교절기로 이어지는데, 이 때에 모든 사람들은 한 주간 전부터 몸을 성결케 하기 위해서 미리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레7:21,민9:6,대하30:17)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요11:56예수님이 과연 체포령이 내린 예루살렘에 다시 나타나실 것인가? 이것이 바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유대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7절 말씀입니다.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요11:57유대인들이 예수님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 것은 예수님에게 체포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세력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만든 장본인은 외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이방인인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살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구약 성경 말씀을 깨끗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다면 결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욕심에 눈이 가려 메시아를 죽이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되면, 하나님을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앞장 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보좌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의 가르치심을 따라 사는 자들은 날마다 성장합니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는 다하라 오네꼬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직 예수님만 높이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4월 9일 오전 6: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