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11:35-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사로의 무덤에 오신 예수님께서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본 유대인들은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요11:36-37하나는 나사로를 ‘정말 사랑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3"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다른 하나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나사로의 죽음은 막지 못하였네’라는 비아냥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늘 자기 입장이나 관점에서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불신하면 인간의 이성과 상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노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미디안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32,000명의 군사가 기드온을 따랐습니다. 이 숫자는 135,000명의 미디안 군대에 비하면 1/4도 안되는 군사입니다. 더구나 미디안 군대는 잘 무장된 훈련된 군대이고 기드온은 군대는 무기도 없고 훈련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군사가 너무 많으니 두려워서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22.000명이 돌아가고 만명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명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가로 데려가 물을 마실 때 좌우를 살피며 물을 먹는 사람만 뽑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게된 군사가 300명입니다. 그러나 그 300명이 135,000의 미디안 군대를 이겼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이끄는 군대를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이 아닌 믿음이 승리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5만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뮐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지 않는다. 믿음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내 생각, 내 경험에 제한되어 원망, 불평하면서 좌절하는 인생을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면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며,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11:38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불신앙의 말들을 쏟아놓는 사람들의 보신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비통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비통은 거룩한 분노의 감정입니다.
33절에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38절에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분노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질병, 고통, 저주 등에 대해 예수님께서 정면으로 분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사람들에게 분노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면 사람에게 분노할 것이 아니라 죄, 죽음, 사탄에게 분노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 부조리만 볼 게 아니라, 부조리 안에 있는 구조적인 죄악의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죄악의 본질에 대해 분노하고 대면하는 영적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비통히 여기셨다는 것은 질병, 죽음에 대해 분노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또한 죄와, 질병, 죽음에 대해 비통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에 분노하시고 무덤과 대결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