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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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요11:27-2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지난번에 우리는 마르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마르다는 인간적 믿음에서 참 믿음으로 변화했습니다.

참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4:18-21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27:25

처음 마르다가 가졌던 믿음은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들었지만, 인간의 이성, 상식, 경험에 근거한 합리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하기보다 ‘압니다’는 것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화 중에 마르다의 믿음을 바로 잡아주십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인간의 이성, 상식, 경험, 지식과 정보, 계산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11: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

여기서 ‘이것을 네가 아느냐가 아니라 믿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마르다는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믿음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날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믿음이 무엇이 문제인가를 깨달아 바꾸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상식에 기초한 믿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으로 바꾸기를 축원합니다.

드디어 마르다는 말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믿음을 가지면 먼저 말이 바뀝니다. 말이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말하고, 입만 열면 비판하고 정죄하던 사람이 칭찬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마르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7

마르다의 말은 이전과 확연히 다릅니다. 그녀의 말에서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마르다의 믿음이 아멘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라는 말은 동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아멘이란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듣거나 기도할 때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아멘으로 바뀌었습니다.

둘째, 마르다의 믿음은 신앙 고백으로 변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믿음의 클라이맥스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식사할 때 그릇을 먹지 않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믿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믿음은 그릇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그릇에 담겨 있는 음식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이 믿음의 내용입니다.

셋째, 마르다는 더 이상 ‘알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마르다는 이 사건이 있기 전에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참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도 마르다와 같은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2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요11:28

28절 말씀에서 마르다가 변한 모습을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마르다는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며 개방적인 반면, 마리아는 수동적이고 수줍어하는 성격입니다. 그런 마르다가 변한 사실을 누가복음 10장 38~42절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

눅10:38-42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밑에서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느라 청소하고 음식 만드느라 분주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던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 마리아를 보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예수님께 말합니다. 누가복음 10장 40절 말씀에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지나치게 예수님을 사랑한 나머지 아예 이래라 저래라 지시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에 맞춰 자신의 방법대로 응답해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마르다는 마리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약간의 시기와 질투로 예수님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28절에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선생님이 너만 예뻐하셔서 찾으신다’라는 시기나 질투가 섞인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둘째, 마르다는 조용히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크게 떠들며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일대일로 만나 인격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마리아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동생 마리아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제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전에 직선적이던 마르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셋째, ‘주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메시지는 늦게 전할 수도 있고 약간 과장해 전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아예 왜곡하여 전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빠르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2022년 3월 31일 오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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