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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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11:18-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11:18-20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사로가 진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했을 때 ‘예수가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었던 것이다’라고 악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절했던 것이 아니라 진짜 죽었습니다. 나사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잔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죽었습니다. 많은 문상객이 와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나사로와 그 가족이 동네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동네의 모든 사람이 와서 문상했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마르다와 마리아의 성품이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셨을 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두 사람 다 예수님이 오셔서 무척 좋았지만 반응은 달랐습니다. 마르다는 뛰어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했고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전혀 다른 성품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개방적인 스타일이었고, 마리아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오셨을 때에도 역시 마르다가 먼저 뛰어나가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21절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11:21-22

마르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굉장한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이 말을 살펴보면 마르다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믿음이 아니고 한계가 있는, 인간적인,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믿음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의 믿음에 문제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르다가 예수님께 한 말에 다 나와 있습니다. 2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11:22

마르다 믿음의 첫 번째 문제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믿음이라고 착각한 점입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 아니이다.’라는 말은 긍정적이고 좋습니다. 희망과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믿음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기적을 베풀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한테 잘 해 주실 겁니다’와 같은 마음은 막연한 희망과 기대입니다. 본질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런 기대는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기대를 믿음으로 착각하지 않기 바랍니다.

두 번째 문제는 마르다의 말에 있는 허점입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지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마르다가 ‘믿는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항상 ‘압니다’라고 말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입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한 말입니다. 지식과 정보가 기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해했다고 다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는 ‘믿습니다’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녀의 믿음의 기초는 이성, 합리성, 지식, 정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은 좋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목마른 믿음, 기대와 희망은 있지만 결정적인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르다의 믿음에 쐐기를 박습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11:23

우리는 여기서 인간적인 믿음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희망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속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이성과 합리성, 정보와 지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결정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해 흔들릴 마르다가 아닙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식의 믿음을 끝까지 고집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식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수 없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지만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식으로 바꿔서 재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수준을 결코 뛰어넘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24절에서 마르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십시오.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11:24

여기에서 또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부활을 믿지만 부활은 지금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한다고 이성적으로 말합니다. 그녀의 말은 이성과 합리성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에게 희망과 기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즉각 응답해 주신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마르다는 종말에 모두 부활할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지금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믿음

어제의 믿음 -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내일의 믿음 -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오늘의 믿음 - 지금, 현재 주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으라

기적을 멀리서 찾지 말라 -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기적의 현장이다.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예배의 기적을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 삶의 기적을

오늘 직장에서 직장의 기적을

오늘 사업장에서 사업의 기적을

오늘 우리의 가정에서 가정의 기적을 기대하라

내 힘, 내 능력, 내 경험, 내 지식을 믿지 말고 - 주님의 능력을 믿자

예수님께는 문제되는 것이 없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니 요단강은 갈라지고 여리고는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일어나라’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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