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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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11:5-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11:5-6

여러분,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면서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듣자마자 만사를 재치고 바로 달려가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때 나사로 가정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대표적인 것이 배신감입니다. 그러실 수가 있나?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나 더 지체하시다니.

나사로의 가정은 아마 보통 사람들보다 더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은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목회학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성도를 성장하게 하려면 목사가 그 사람과 너무 가깝게, 친근하게 지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거리를 좀 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성도와 목자의 관계가 너무 친근해지면 사랑의 채찍을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이라도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자식을 가르치려고 자식에게 엄하게 대하면 그것을 훈련이라고 생각지 않고 배신감부터 느끼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운전을 못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이혼을 각오한다면 몰라도. 왜 그렇습니까? 잘하라고 가르치는데 아내는 배신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친밀한 사이에서는 훈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연약함이 있습니다.

본문의 예수님도 겉보기에는 부름을 거절한 것 같아 보입니다. 이때 나사로의 가정이 느꼈던 배신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또 8절에 보니까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고 가시려 하니이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나사로가 살고 있는 베다니 지역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로 베다니로 가시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아무리 그들을 사랑해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지는 않지. 그리하여 그들은 낙심하게 됩니다.

사람이 고난 당할 때 성도에게 임하는 중요한 시험은 배신감과 낙심입니다. 악한 마귀가 성도를 넘어뜨릴 때는 두 가지 계략으로 넘어뜨립니다.

하나는 배신감이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시험에 빠질 때 그 원인을 찾아보면, 전체 교인들의 마음 가운데 이상한 배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든지, 성도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저 사람을 믿었는데 왜 저러나’하며 서로가 배신감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 배후에는 누가 숨어 있습니까? 악한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이 아니라 마귀로부터 오는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낙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기도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낙심입니다. 기도해도 안되는 가봐. 이것도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여러분도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배신감을 느끼거나 낙심을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와 달라는 전갈을 받고도 즉시 가시지 않고 이틀을 지체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미국의 기독교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 진행자인 조이스 마이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만큼 인생의 타이밍을 정확히 아시는 분은 없다.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할수록, 세상 모든 일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벽한 시점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배우게 될 것이다.

맥 클라렌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가 요11장을 놓고 이런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나사로의 식구들에게 예수님이 더디 가신 것은 사랑의 지연이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지연하신 것이다.’

옳은 말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일부러 이틀을 더 유하신 것은 늦게 응답하신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최상의 응답이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응답이 절대로 늦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시의 응답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사로가 살아났고, 살아난 나사로를 통하여 예수님이 영광 받으셨으며,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로 인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 응답이 늦은 응답입니까? 어떻게 시효가 끝난 응답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늦은 응답이자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가장 적절한 때 주신 응답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응답이 늦는다고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참 믿음이 무엇입니까? 응답이 늦을수록 더 잘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아브라함과 요셉 다윗 등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아 누렸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려가고, 열심히 충성했지만 감옥에 가고, 사울 왕에게 쫓겨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사30:18

왜 하나님이 기다리실까요? 우리가 달라고 할 때 바로 주면 우리에게 유익이 안 되겠기에 응답을 지체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기다렸다가 주는 게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유익과 기쁨이 될 것을 아시기에 적절할 때가 오기를 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을 누가 나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기다림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무릇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애3:25,

기다릴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생의 고통을 당할 때마다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먼저 주님 앞에 빨리 아뢰어야 합니다.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 들었나이다.’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실직을 당하였나이다.’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의 집에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의 자녀가 집을 나갔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지만 때로 이런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저하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 알려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시50:15

환난을 당할 때 주님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환난 날에 주님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주님이 우리를 건지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것이 무엇이든지 마리아와 마르다 처럼 예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께 기도했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금방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고통을 아뢰면 금방 응답이 올 때도 많지만, 응답이 늦어지거나 전혀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여기에도 분명히 더 좋은 뜻이 있을 거야.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받으시려고 그러는가 보다.

어떤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예수를 믿고, 어머니는 날마다 새벽기도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학생 또한 믿음이 굉장히 좋았을 뿐 아니라 꿈도 많았고 머리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몸이 갑자기 이상에 생겼습니다. 온 몸에서 기운이 바지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어가는 병이었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진찰을 받았습니다.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 병명이 밝혀졌는데 근육 무력증이라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이 병은 갈수록 근육에서 힘이 빠져서 나중에는 드러누워 말라 죽게 되는 병이었습니다.

아직 새파란 학생이, 그것도 예수님을 그렇게 잘 믿는 학생이 이런 병에 걸렸으니 얼마나 눈앞이 캄캄하겠습니까? 치료 받을 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병은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연필을 들 힘조차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입을 다무신 채 가만히 계신 것 같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록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5년이 다 갈 무렵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그는 그 고통스러웠던 5년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상황을 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일을 위해 저를 준비시키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공적인 기업 경영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기업을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경영할 수 있는 신앙적 준비요, 다른 하나는 다방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광범위한 지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병석에 있을 때 저에게 두 가지를 준비시켜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5년 동안 읽었던 책과 모든 자료들이 그 뒤 1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재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질병도 그것이 죄로 말미암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귀한 은혜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귀한 것입니다. 질병이든, 실패이든, 성공이든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장애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훌륭한 기회가 됩니다. 이 랜드 박성수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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