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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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11: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11:1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기가 끊이지 않고 밀려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나사로의 가정에 위기가 닥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위기는 바로 나사로의 죽음입니다. 나사로의 가정은 결손가정입니다. 부모가 계시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고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의 유일한 희망은 오라비 나사로입니다. 그런데 그 오빠가 죽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보통 가정의 오라비가 죽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그 가정의 희망이 죽은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인 보호자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이런 위기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십니까? 기둥 같은 가장이 쓰러지지나 않았습니까? 모든 희망을 걸었던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진로나 결혼 문제가 벽에 부딪쳐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그런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답답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도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부르짖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요11:2

5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절 말씀에는 마리아 이야기만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마리아와 마르다는 모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자기 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더 좋은 편을 택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말씀을 듣는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42

마리아는 가장 아끼는 것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거룩한 낭비입니다. 흔히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꽃을 사서 선물하듯,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귀중한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마리아를 비난했습니다. 가롯 유다는 화를 냈습니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마26:8-9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26:10-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11:3

3절 말씀에서 두 여인은 오라비가 죽게 된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담아 사람을 통해 예수님께 보냅니다. 예수님께서 오라비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은 짧은 구절이지만, 매우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누이동생들이 예수님께 보낸 쪽지 내용에 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아주 간단하게 썼습니다. 저는 이 메시지에서 여인들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엄청난 믿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섭섭함이나 원망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죽을병이 들 수 있느냐, 혹은 사랑하는 자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여기에 오시지도 않느냐며 원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섭섭함이나 원망이 없습니다.

다니엘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6:10

바울과 실라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16:25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섭섭이가 들거나 원망을 하지 않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힘들게 해도 섭섭함이나 원망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아내가 당신을 섭섭하게 해도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섭섭한 말을 들어도 원망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섭섭해 하고 원망도 합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 속에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이나 원망을 담고 있습니다.

2협박과 공갈이 없습니다.

우리는 생활 중에 협박성 발언을 자주 합니다.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려는 것입니다. 때로 사랑은 협박일 수도 있습니다.

3병든 오빠를 고쳐달라는 말이 없습니다.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고 협박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쪽지에는 일방적으로 예수님께 오라비의 병을 낫게 해 달라는 협박성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성숙한 기도는 사실을 그대로 주님께 내놓는 것입니다.

4예수님께 속히 찾아와 달라는 부탁도 없습니다.

즉 예수님의 조건과 능력에 월권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언제 어떻게 응답해 달라고 시간과 방법을 명령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 능력, 사랑 등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생각 이상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에 간섭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의 쪽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호소입니다. 오라비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뿐입니다. 그 간절한 마음은 결국 죽은 나사로를 살리게 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하나님께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권위와 능력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 능력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기도답게 하는 것은 주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아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주권, 선택, 지혜에 월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며,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성숙되고 깊은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에는 ‘주님’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다음은 ‘보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간절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민족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나라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가정, 교회,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열망으로 인해 뜨거운 눈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사랑하시는 자’라고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데…’라고 말합니다. 그 말의 주체는 자신입니다. 즉 하나님께 섭섭함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쪽지에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변덕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다가 가끔 실수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완전하지 못하고 가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이 진짜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라비 나사로’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인척 관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엮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 한마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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