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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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요10:30-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10:30

바로 앞 절에 보면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확실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9

그런데 이 말씀을 28절과 비교해 보면 차이점이 있습니다.요10:28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8절에는 ‘그들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29절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예수님의 말씀에 일관성 없는 모순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일체성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 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 인격체가 하나 된다는 것은 곧 둘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개별적으로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뜻과 생각과 말과 행동과 모든 일에 있어서는 하나이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은 서로 다른 독립된 인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모든 생각하는 것이나, 뜻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신성으로 일체가 되시기 때문에 삼위가 되시면서 일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2위이신 예수님의 뜻은 1위이신 성부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고,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과의 일체성,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8:55-58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분명한 선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700년 전에 메시아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9:6

이 예언에서 증거하듯이, 이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경에 생존했던 유한한 인생이었으나,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전 4년경에 태어나셔서 약 33년간 사시다가 주후 30년경에 승천하신 것은 시간적인 제한이 있는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신 기간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볼 때, 예수님께서는 영존하시므로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3

성경에는 태초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요일1:1

"태초는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의 태초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1:1과 요일1:1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기 훨씬 이전, 다시 말해서 시작이 없는 영원을 말합니다. 온 우주 만물에 시작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분이십니다."

창1:1의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요10:31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10:24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어느 날 집 마당을 걷다가 무심결에 개미집 입구를 발로 찼습니다. 깜짝 놀란 개미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난리를 벌였습니다. 목사님은 그 개미를 보면서 ‘개미들아, 내가 실수로 찬 거야. 지진이 난 게 아니야. 진정해’라고 말했습니다. 개미들은 목사님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으니 여전히 우왕좌왕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내가 만약 개미가 될 수 있다면 개미들에게 지진이 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고 안정을 찾게 해 줄 텐데, 그럴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영적인 눈과 귀가 멀어 버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그 사랑을 다시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영적인 눈과 귀가 먼 채로 당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유대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요10:32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에워싼 유대인들이 저마다 돌을 들고 치려는 것을 보시면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성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11:20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이고,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시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모든 일은 그 어느 하나도 책잡을 데가 없는 선한 일이요, 칭송받을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선한 일만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선한 목자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로 오신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요10:33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선한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습니다.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는 이유는 선한 일 때문이 아니라 신성 모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믿으면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두 틀린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성경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2

올바른 지식,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나의 취향, 방법, 습관대로 믿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믿음은 모두 가짜입니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모두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결국 논쟁의 쟁점은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이냐 아니면 하나님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인간인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구원의 열쇠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냐 아니면 인간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이라면 ‘죄인인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간의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종교 창시자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면, 아마 그분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히 인간이 될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결론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신 분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선인으로 믿는 게 아니라,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영생의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은 영원불멸한 것이며, 하나님의 손에 있는 영생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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