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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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요10:16-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10:16

제가 어렸을 때에는 해가 질 무렵이면 자기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러웠습니다. “아무개야” “누구야”하고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가 집집마다 울려 퍼졌습니다. 금방 아이가 대답하고 튀어 나오지 않으면 엄마는 온 동네를 헤매면서 아이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어둑어둑해지면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게 됩니다. 만약 그 때까지 놀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엄마가 장사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집의 아이였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저녁이 되면 목자가 자기 양 떼를 불러서 챙깁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한 마리도 빠짐없이 다 찾습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다 찾으면 양 떼를 우리 안에 넣고 우리 문을 안전하게 잠급니다. 만약 자기 양들을 다 챙겨서 우리 안에 가둔 후에도 그 때까지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이 있다면 그 양은 주인이 없는 양이거나 길을 잃은 양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은 ‘장차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장래의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들어와 있지 않은 이방 사람들 역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예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할 양으로 보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구원해 주신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유대 공동체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 일이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7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예수님의 관심과 사랑은 유대 공동체를 넘어 온 인류를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음성을 들은 이방인들도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이방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1-13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대대로 지속되어 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장벽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님 안에서 화목하게 되어 하나로 연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둘이 한 무리가 되어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겉모습이나 배경, 재산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심지어 차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인종, 계급, 성별, 재산의 차이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적이나 나이,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존재하며, 그들은 모두 목자이신 예수님만을 따릅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요10:17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절정은 바로 여기서 나타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내 목숨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물론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기 전에도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마17장은 변화산 사건을 기록했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이 변화되신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17:4-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5-36

이처럼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아들에 대하여 이렇듯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시는 이유는 바로 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스스로 택한 십자가 죽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사랑과 순종으로 말미암은 자발적인 자기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조롱과 수치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리하면 인류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려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목숨을 잃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내가 내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한 혁명가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버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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