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10:11-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은 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실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양들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아닙니까? 자기 생명보다 양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선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다윗이 자기 아버지의 양 떼를 치면서 겪었던 일을 사울 왕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때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삼상17:34,35사자는 수염을 잡으면 꼼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싸울 때 보면 머리채를 잡으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다윗의 행동은 자기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양을 더 사랑할 때에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런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양을 위하여 싸우는 목자라고 합니다.
11절부터 18절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자신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을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하고 계십니다.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10:18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내가 양들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노라’는 말 속에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랑 때문에 주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자나 곰과 싸우다가 힘이 부족해서 목숨을 잃게 되는 그런 목자가 아닙니다. 강도와 싸우다가 힘이 모자라서 죽음을 당하는 그런 목자도 아닙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10:18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지 의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주님의 생명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심리학자요, 신학자입니다. 오랫동안 노틀담 대학과 예일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지냈으며, 매년 무개 있는 책을 한 권씩 써 낼 정도로 부지런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1996년도에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년을 캐나다에 있는 ‘데이 브레이크 (Day Break)’라는 정신 지체 장애인 수용 기관에서 봉사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가 끝까지 맡아서 돌보던 장애아는 아담이라는 25살 먹은 청년이었습니다. 아담은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는 중증 장애인으로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습니다. 옷도 혼자 힘으로 입을 수 없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심한 장애를 안도 있던 터라 자기를 돌봐 주는 사람이 세계적인 학자라는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자기에게 그렇게 정성을 쏟는지도 그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우웬 박사는 그런 것에 전해 개의치 않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의 얼굴을 닦아 주고, 이를 닦아 주고, 면도도 해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옷도 입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는 제 맘대로 움직이는 그의 손을 꼭 붙들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만도 두 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필립 얀시라는 유명한 기독교 저술가가 나우웬 박사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박사님, 박사님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또 아직 써야 할 책도 많은데, 왜 여기 와서 이런 일에 매여 있습니까? 이 일은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자 나우웬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기 와서 이 젊은이를 돕는 것은 젊은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많은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 아담이라는 청년을 통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으며, 또 영적으로 심한 장애를 안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는지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영적으로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담이라는 청년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해서 아침 저녁으로 수고하는 분이 세계적인 학자라는 것을 압니까? 모릅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 주어도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그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자기 기분에 안 맞으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 발작하는 것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내가 내 생명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죽었노라. 그리고 지금도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하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별로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나를 사랑하시는지 잘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는 영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너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노라. 나는 내 생명보다 너를 더 사랑하노라’
그리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우리 각자에게 쏟아 부어주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자비로운 주님의 음성을 조용히 앉아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저는 이따금씩 설교는 듣는 성도들이 참 부럽습니다. 저는 설교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설교를 하면서도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긴장은 말씀을 마음으로 전하기보다 머리로 전달하게 하는 독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은 그런 긴장이 없기 때문에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셨다’라는 말씀 앞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을 쏟을 수도 있고, 감사에 겨워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는 청중은 은혜를 받아도 설교자는 은혜를 못 받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척 공감했던 일이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한번은 지방을 여행하다가 주일이 되어 한 작은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젊은 목사가 열정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설교의 제목은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설교였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 설교를 듣는 동안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다 끝난 다음에 목사님이 젊은 설교자에게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스펄전 목사입니다” 그 말에 이 젊은 목사가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세계적인 설교자가 자기 설교를 듣고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가 그날 했던 설교는 다름 아닌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였기 때문입니다.
젊은 목사는 솔직히 털어 놓았습니다. “목사님, 오늘 제가 한 설교는 목사님의 설교를 가지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스펄전 목사님은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설교를 하면서 오늘 받은 은혜를 받지 못했어요. 오늘 그 말씀이 얼마나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설교할 때 받지 못한 은혜를 앉아서 들으면서 받았습니다.”
저는 스펼전 목사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압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너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하노라. 십자가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이 너를 사랑하노라’고 하시는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유받고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