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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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10:10-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이 말씀은 요한복음의 핵심이며, 기독교 신앙의 본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온 것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요, 기독교의 목적입니다. 구원의 목적은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도적이나 사탄이 하는 일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 수많은 이단들이 우리의 영혼을 도적질하려 합니다. 행복,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유혹해 이단에 빠지게 하거나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착념케 합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해서 우리의 영혼을 도적질 해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의 모든 것이 파멸되고 육체, 영혼, 인생이 망가져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죽이고 파멸시키는 실체가 바로 도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요, 부활이요, 구원입니다.

구원의 핵심은 생명에 있습니다. 행복의 핵심도 생명에 있습니다. 돈, 건강, 인기, 성공을 소유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소유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전달자이신 성령님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어떤 인물에 대해 알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그 사람은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신분을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한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답하기 위해 사람들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하면서 명함을 내놓습니다. 명함에는 그의 이름과 일하고 있는 직장, 직함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만 보아도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즉 그 사람의 교양이나 인품, 성격 등과 같은 인물의 됨됨이가 어떠한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명함에는 그런 것이 씌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쩌면 ‘그가 누구인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남에게 사기를 당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게 된 데는 저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얻었는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은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너무 쉽게 믿어 버리고 돈을 건네주거나 보증을 서 주었다가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와 같은 약점이 있습니다.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만 가지고는 사람을 믿을 수 없고, 마음을 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러한 약점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계시하실 때 ‘하나님은 누구이신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분이신가’하는 것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야훼니라. 자존자, 곧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자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대답을 들으면 ‘참 대단하신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빌려 ‘어떤 하나님이신가’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셨습니다.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니 하시며,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대답을 들을 때에야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하고 비로소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분이신가를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첫 구절에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소개됩니다. 빛이니 생명이니 하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해서는 이런 용어들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답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인가’애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본문에서 드디어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대답을 해 주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하나님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매우 목가적이고도 낭만적인 비유를 드셨습니다.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선한 목자라고 하면 우리 마음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그려지는 그런 이미지만으로는 예수님의 선하심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어떤 비유도 예수님의 선하심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차원이 높은지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선한 목자라고 표현하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당시 목축업을 하면서 살아가던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정감어린 상징으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 주시는 말씀이라기보다 ‘예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선한’이라는 말은 ‘좋은’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선하다’고 하면 흔히 ‘악하다’의 말의 반대 의미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선하다’는 말은 그 성격상 도덕적인 의미를 함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시면서 삯꾼 목자와 비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10:11-13

삯꾼 목자가 악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삯꾼 목자는 돈을 보고 일하기 때문에 진정 양 떼를 위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양을 심하게 몰 수도 있고, 이리나 짐승이 덤비면 자기 생명을 위해서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삯꾼 목자는 좋지 못한 목자이지 악한 목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목자 즉 좋은 목자이십니다. 양들을 위해서 일하는 진실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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