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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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7-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러므로 : 앞에서 예수님이 양과 목자의 비유로 설명을 했으나 깨닫지 못하므로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요10:6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7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앞에서 말씀하신 양과 목자의 비유와 연결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양의 문은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분하는 문입니다. 문을 통하여 들어가는 사람은 목자지만,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입니다.

양의 문은 양들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문이 굳게 닫히면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게 됩니다.

양의 문은 목자의 음성을 들은 양들이 신선한 꼴과 풍성한 물을 먹기 위해 통과하는 관문이기 때문 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10:9

1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양의 우리에 문이 하나뿐이듯이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구원자 이십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치고 구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죽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왜 사람들은 영생하지 못하고 죽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합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5:12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 있어도, 성자나 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해도 자기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은 절대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성형 천국입니다. 방학 때를 보내고 나면 여대생들의 얼굴이 예뻐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콧대가 우뚝 솟고, 쌍꺼풀이 예쁘게 드리워진 것을 보면 “성형 수술을 받았니? 어디서 받았니?” 하면서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시집가서 그에게서 태어날 자식입니다. 자신은 성형 수술을 해서 코를 높이고, 눈을 예쁘게 보이고, 광대뼈를 깎아 아름답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자식만큼은 어쩌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성형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자식은 엄마의 원래 모양을 닮아 납작한 코와 실눈을 가지고 태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성형 수술로 자기 모습을 감추려 해도 DNA 유전자는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위장하고 변장해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도덕과 수양으로 죄인의 유전자인 DNA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죄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을 때 단순히 육신의 생명만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다 구원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었든지 젊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많이 배웠든지 적게 배웠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재물이 많고 적은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원 받지 못하면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수양과 도덕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보면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엡2:5을

시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시체가 스스로 몸부림친다고 살아납니까? 우리가 시체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우리 힘이나 노력으로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에게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 받으려면 그를 찾아야 합니다.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 앞으로 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썩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을 심어 주십니다. 새로운 DNA를 심어 주십니다.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자리를 잡음과 동시에 영안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의 귀가 열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 (조에입니다. 푸쉬케가 아닙니다) 입니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문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벋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양의 우리에는 문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으로 넘어가면 그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보다 앞에 온 사람을 일컬어 절도요 강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구약 시대에 온 모든 선지자들을 두고 강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눈을 뜨고 하나님의 아들 앞에 무릎 꿇고 절한 나면서부터 맹인되었던 사람을 유대 사회에서 축출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과, 예수님 당시에 자칭 메시아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던 사람들을 두고 강도요 절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양의 문은 하나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심지어 목자라 해도 그 문으로 들어와야 됩니다. 그렇다면 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문 말고는 우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담을 넘어가는 자는 목자가 아니라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양의 문이라고 하신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믿고 따르는데, 세상 사람들은 바로 이것 때문에 독선주의니 배타주의니 하면서 기독교를 욕하고 비방합니다. 그들 생각에는 종교 다원주의가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따라서 어느 종교를 믿든, 그 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면 좋겠는데, 기독교는 유달리 타 종교를 배척하고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라고 주장하니 독선이라는 것입니다.

카피 라이터 이만재 씨가 수백 명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여, 그것을 토대로 ‘교회 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을 펴내어 화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실린 내용에 교회 가기 싫은 이유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너무 배타적인 것 같다. 타 종교, 타 종파를 존중할 줄 알아야 내 종교, 내 종파도 존중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그 이웃에는 이웃 종교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는가? 기독교 특유의 종교 이기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안 간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 진리를 주장하는 것을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돈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타 종교의 지도자를 존경합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도 사랑합니다. 또 각 종교에 나름대로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수긍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억지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종교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런 값싼 이론 때문에 진주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돼지에게 던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 중에 서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명분으로 “당신 아내가 내 아내이고, 내 아내가 당신 아내이니, 기분 좋은 대로 삽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존경한다. 사랑한다. 관용한다는 말 때문에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바보 같은 짓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 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잘 아실 것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유대 당국자들에게 체포되어서 재판을 받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가 자기를 양의 문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 솔직하게 말하라’

이에 대해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화가 나서 야고보를 끌어다가 높은 벼랑에서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라고 하는 것은 순교를 당할지라도 굽혀서는 안되는 진리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다’라는 말만 들으면 바위가 상하십니까? 물론 관용이 많고 너그러운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진리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손에 있는 진짜 보석을 두고 가짜라고 말하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손에 있는 진짜 보석을 두고 ‘내 것은 진짜요’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친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자시다’라고 주장한다고 속이 좁은 것도 배타적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바른 것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아직도 이 사실에 대해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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