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요10:1-2

우리가 이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우기와 건기가 있습니다. 우기 철, 비가 내릴 때에는 집 가까운 곳에 풀이 있어 먹일 수 있지만, 건기 철이 되어 풀이 마르기 시작하면 풀을 따라 이동하며 풀을 먹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곳이 너무나 멀기 때문에 건기 때에는 6개월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들판에 공동으로 커다란 우리를 만들어 놓고 문을 답니다. 들판에 양을 그냥 두면 들짐승이 물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우리에 여러 목자의 양들이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밤이 되면 목자들은 양들을 우리 안에 몰아넣고 문지기에게 맡긴 후 쉬러 갑니다. 그런데 우리라는 것이 우리가 볼 때는 엉성하기 그지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지금도 목축으로 살아가는 맛사이 지역 공정길 선교사님 사역지에 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맛사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목축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짐승 우리를 보면 야트막한 나무를 삥 둘러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사나운 짐승만 피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나운 짐승의 특징은 직선으로만 갈 줄 알지 꺾어 다니는 것을 모른다고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문을 만들 때 직각으로 꺾어 들어가도록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맛사이 소똥 집도, 짐승 우리도 직각으로 꺾어서 들어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일까요? 도둑입니다. 담장이 낮고 허술하기 때문에 도둑이 담을 넘어 오는 것이 쉬운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목자가 왔습니다. 목자는 담을 넘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지기가 목자를 알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잡으러 뛰어 다니지 않습니다. 문자는 양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하나씩 하나씩 나옵니다. 양들이 다 나오면 목자가 앞서 갑니다. 그러면 양들이 모두 그 목자를 따라 갑니다. 이후에 다른 목자가 와서 자기 양을 불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로 들어가지 않고 담장을 넘어서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도적 같은 지도자를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교회 안에 다른 교훈을 들고 들어오는 자가 도적 같은 리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는 교회 안에서 거짓말하고 호색하며, 탐심을 좋아하고 육체를 따라 살며,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의 탈을 쓴 이리로서 사람들을 속이고 흥분시키며 선동한다고 했습니다. 유다서에는 ‘몰래 들어온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56장에는 ‘몰지각한 목자들’을 지적하셨고, 예레미야서 23장 54절에 ‘양 무리를 흩어버리는 목자’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에는 ‘양떼를 잡아먹는 목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삯군 목자이며 종교적 가면을 쓴 타락한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자는 양들을 안전하게 인도해 냅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이나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선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절도며 강도는 예수님 당시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이런 거짓 목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5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거룩을 외쳤지만, 그 속은 탐욕과 교만이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문으로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참 목자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말씀이 겔34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34: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기름을 부어 백성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삼하5:1-2

하지만 많은 왕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개인적인 탐욕과 우상 숭배에 빠져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오히려 살진 양들을 도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렘23:1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겔34:2-5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진노를 사서 주전 587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영원히 인도할 참 목자가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한 목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마2:6

3절 말씀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3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삭게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면서 부르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1

이와같이 우리 또한 주님이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주님을 떠나면 꼭 고민이 생기거나 잠이 안오거나, 고난이 오든지 .. 주의 음성이 들립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주님께서는 우리를 늘 부르십니다. 사랑으로, 말씀으로, 은혜로, 사람의 끈으로 부르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입니다.

원래 교회라는 말이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즉 우리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부름 받아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영적인 양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참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부르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 리더십이 일 중심이 아니라, 관계 중심이란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경의 관심사는 양들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얼마나 양들을 잘 관리하느냐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 중심의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능력 있게 일을 잘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일이 끝나고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워집니다. 아무도 그를 찾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계 중심으로 일하는 사람은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도 많아집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지 않고 일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로 교회에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고 일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선한 목자가 양들을 안전하게 인도해 내는 이유는 그들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목적은 약한 사람, 절망하고 있는 사람,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거듭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목자는 많은 양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한 마리 양이라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과 목자의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또 하나는 진정한 리더십이란 물질 중심이 아니라 인격 중심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양들은 목회의 성공이나 부의 상징이 아닙니다. 교회의 크기에 따라 좋은 교회와 나쁜 교회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간에 양떼들이 잘 양육 받고 꼴을 잘 먹으며 평안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좋은 교회입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이, 현대 교회는 ‘좌석수(sitting capacity)󰡑가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파송지(sending capacity)󰡑가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목자와 양들의 관계입니다. 목자와 양들의 관계가 잘 이뤄진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 진정한 리더십이 살아있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