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39-4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나면서 맹인된 사람을 고쳐주는 매우 감격스러운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전개되는 내용은 이상하게도 너무 살벌하고 답답하고 숨 막히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 뿐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눈을 뜨고 본 일이 없는 맹인을 주님께서 고쳐 주셨다면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마땅할 텐데 9장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보면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의 눈이 감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무엇이 그들의 영의 눈을 멀게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영의 눈을 뜨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의 눈 역시 잘못하면 흐려지거나 심한 경우 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들의 영안을 어둡게 했는지를 분명히 알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영의 눈을 흐리게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세 가지요소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1잘못된 생각입니다.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살아있는 순교자로 불립니다. 어떤 분은 그 분을 뵈면 얼굴에서 신비한 빛이 나오며 온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범브란트 목사님을 만나본 순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얼굴에서 신비한 빛이 나오고 온화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심한 고문으로 일그러진 흉한 얼굴이었다는 것입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의 고백. 저는 1948년 2월 29일 지하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납치되어 그 후 여러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고문했습니다. 제 척추와 뼈들을 부러뜨렸고, 12군데나 칼자국을 냈고, 18군데의 화상 자국을 남겼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나온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3년 후에 다시 투옥되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잡혀간 후 제 아들 미하이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유랑아가 되었으며, 미하이를 불쌍히 여겨 몰래 도와주었던 두 자매님들도 잡혀가 매를 맞아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안쪽에 톱날이 선 족쇄로 채워졌습니다.
거꾸로 매달아 채찍으로 때리는 고문 정도는 예사입니다. 저는 지금도 냉장고 문을 열기를 꺼리는데, 속옷만 입고 냉동실에 끌려갔던 고문의 후유증 때문입니다. 냉동실에 들어간 우리는 얼어 죽을 것 같으면 다시 따뜻한 방으로 옮겨졌고, 몸이 풀리면 다시 냉동실에 잡아넣는 고문을 반복적으로 당했습니다. 더 이상의 것들은 차마 언급할 수조차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편견, 선입견,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편견, 선입견, 혹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영안이 흐려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솔직하게 살펴봅시다. 그리고 다시한번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갑시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8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을 환하게 밝혀주고 우리의 갈 길을 바로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모든 지식들은 거짓된 것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 눈을 어둡게 합니다. 그러므로 눈이 밝기를 원한다면 거짓된 정보나 지식에 마음을 쏟으면 안 됩니다. 편견과 선입견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만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2우리의 영안을 흐리게 하는 두 번째 요소는 율법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눈 먼 사람을 고쳐주시자 곁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안식일에 왜 맹인을 고치느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침을 뱉아서 손으로 진흙을 이겼으니 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게다가 그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발라 주기까지 했으니 이것 보다 더 큰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안식일을 범할 수 있느냐고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들은 안식일에 전구도 못 갈게 합니다. 손톱도 못 깎습니다. 발을 삐어도 찬물로 냉수마찰도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서 소경의 눈에 바르는 행동이 곱게 비쳤을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생 동안 앞을 못 보던 자가 광명을 찾는 경사를 만났는데도 율법을 내세우며 예수 그리스도를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율법주의란 법이나 형식을 앞세워서 남을 판단하는 일체의 태도를 말합니다. 본질보다는 형식을 중요시하고, 내용보다는 외형을, 정신보다는 법을 우선에 두고 사람을 잡으려 드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율법주의는 그 당시에만 성행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율법주의에 매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평신도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까지도 율법주의에 매여 영의 눈이 흐려져서 잘못 보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에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배의 형식이나 예배 순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비판을 합니다. 벌써 율법주의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주일성수의 본질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기쁘게 하는데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조건들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비판하며 괴롭힙니다.
기도의 본질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고 구하는데 있지만 어떤 사람은 ‘몇 시에 일어나서 얼마나 기도 했는가’를 가지고 사람을 비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의 본질은 그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받아먹고 순종하는데 있지만 어떤 사람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었으며 얼마나 많이 아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려 듭니다.
어느 교회 성경 퀴즈 대회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상을 받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성도들의 반응은 차가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동네에서 알아주는 싸움 대장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면 뭘합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소문난 싸움꾼이고, 말씀으로 남을 판단하기만 하는데요.
헌금의 본질은 기쁨으로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데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액수를 가지고 헌금의 경중을 따집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 안에도 율법주의가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주의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영의 눈이 흐려집니다.
기도를 많이 합니까? 나름대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많이 압니까?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들 가운데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 생활도 열심히 하고 온갖 일들로 충성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의 전통에 매여서 눈이 흐려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본질을 보는 눈을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눈이 형식과 법 때문에 흐려지지 않도록 은혜를 주셔서 항상 밝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눈이 어두워 있던 사울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26:16-182022년 3월 2일 오전 6: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