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39-4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나면서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고쳐주신 데는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구원자 되심을 드러내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위해 주님이 이 맹인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볼 사람은 보게 하고 감아야 할 사람은 감게 함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내용이 영적인 눈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은 저나 여러분이나 너무 잘 압니다. 우리 중에 육신의 눈 을 뜨지 못해 고통 하는 사람은 가끔 있을 수 있지만 영의 눈이 감겨 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적으로 말하면 영적으로 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원자 되 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은 이것을 일컬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말합니다.
또 영적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이 영적으로 보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영적으로 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는 영적으로 눈을 뜨지 못하고 한평생을 캄캄한 데서 헤매다가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이 사람들만큼 불행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11:8하나님이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을 주신 사람은 평생을 못 봅니다. 그래서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맹인 중에 자기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빛을 더 환하게 밝혀준다고 해서 볼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맹인 앞에서는 빛이 밝게 빛나는 대낮이나 칠흑과 같은 한밤중이나 못 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맹인이 보려면 시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눈이 열리려면 하나님이 그 눈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상하게 열어주시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더욱이 스스로 눈을 열고 싶어하지도 않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 그런 불행한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주의 은혜로 영의 눈을 떴습니다만, 이 영안이라는 것은 너무 예민해서 자칫 잘못하면 흐려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다시 감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 중에서 눈만큼 예민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상한 방법으로 눈이 항상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눈은 하루에 25,000번 이상 깜박인다고 합니다. 깜박이는 중에 눈물샘에서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절한 양의 눈물이 끊임없이 나와서 눈을 항상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야만 눈이 흐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 중에는 안경을 닦는 수건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두 시간만 안경을 끼고 있으면 안경알에 먼지가 앉아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밝히 보려면 자주 닦아 줘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의 눈도 안 닦아 주면 그 만큼 흐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나면서 맹인인 사람을 고쳐주는 매우 감격스러운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전개되는 내용은 이상하게도 너무너무 살벌하고 답답하고 숨 막히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 뿐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눈을 뜨고 본 일이 없는 사람을 주님께서 고쳐 주셨다면 축제 분위기가 되어야 마땅할 텐데 9장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보면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의 눈이 감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못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무엇이 그들의 영의 눈을 멀게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달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영의 눈을 뜨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의 눈 역시 잘못하면 흐려지거나 심한 경우 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들의 영안을 어둡게 했는지를 분명히 알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영의 눈을 흐리게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세 가지요소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1잘못된 생각입니다.
잘못된 생각이나 지식, 통념, 시각은 우리의 영안을 흐려놓을 수 있습니다. 심하면 우리의 눈을 가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맹인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주님 저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저런 불행을 겪습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것은 제자들을 위시해서 그 당시 유대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지식이요, 생각이었습니다. 잘못된 관념이었습니다.
그들은 앞 못 보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죄 때문에 그런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받는 고통이나 불행을 전부 죄 값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 사람 죄가 아니다. 부모 죄도 아니다.”
예수님은 일반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통 당하는 사람을 놓고 죄 값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그들로 더 큰 고통을 당하도록 정신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을 봅니다.
9장에 등장하는 눈먼 사람을 보십시오. 만일 그가 맹인이 된 것이 본질적인 죄 때문이라고 한다면 왜 그 사람만 그런 불행을 당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인류의 모든 죄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죄로 인해서 이렇게 슬픔과 고통이 많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만일 그 죄 때문에 당해야 하는 불행이라면 똑 같이 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저 사람은 눈을 감고 있는데,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맹인이 아니라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남의 불행에다 본질적인 설명을 적용하며 죄 값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관념이나 지식이 우리 마음을 가리우면 바로 보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이나 유대 나라 사람들처럼,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잘못 해석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9장에 등장하는 맹인을 보고 예수님이 설명하시는 내용을 들어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9:3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저 사람을 통해서 선하신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그를 맹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며, 그래서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불편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여러분, 그 맹인이 당하는 고통에 이렇게 굉장한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도대체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 사람이 맹인 된 것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구나. 그래서 몇십년 동안 저 사람이 저렇게 고통을 당하면서 기다렸구나. 이제 드디어 때가 되자 하나님이 저 사람의 눈을 열어주셨구나.’
이것을 미리 깨달았더라면 누가 그를 천대했겠습니까? 그의 부모가 자기 자식을 왜 그런 식으로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도록 내버려뒀겠습니까? 그들의 영안이 잘못된 생각으로 어두워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통을 바로 해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잘못된 말을 많이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우리 주변에도 보면 잘못된 생각이나 지식 때문에 영안이 흐려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정보나 지식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그런 것들로 인해 예수 믿는 우리의 판단력도 충분히 흐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영안이 뜬 다음에도 안 믿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토정비결이니 사주팔자니, 궁합이니, 관상학이니 하는 잘못된 통념들의 영향을 받아 영의 눈이 잘못된 크리스천들이 꽤 많습니다.
이제 인터넷을 통해서 매일 사주팔자를 봐주는 프로그램이 등장을 하고, 젊은이들 가운데는 아예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 사주팔자를 보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가 막힌 현실을 놓고도 영안을 바로 뜨고 이와 같은 무서운 사탄의 도전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끌려 다닙니다. 점치는 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도 자주 듣습니다. 예수 믿는 집사 중에서 인터넷을 켜 놓고 오늘 내 팔자가 어떨까 하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히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거짓된 정보나 지식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영안이 흐려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솔직하게 살펴 봅시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돌아갑시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8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을 환하게 닦아주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 이외의 다른 모든 지식들은 거짓 된 것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 눈을 어둡게 합니다. 그러므로 눈이 밝기를 원한다면 거짓된 정보나 지식에 마음을 쏟으면 안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만 우리의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