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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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요9:26-3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요9:26-27

맹인이던 사람의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바리새인들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책잡을 증거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번째 했던 질문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질문했습니다. 즉 처음 질문은 맹인이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묻는 것인데 비해, 이번 질문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여 눈을 뜨게 해 주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잡아서 정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맹인이던 사람은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바리새인들에게 비난하는 투로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이 말은 바리새인들에게 대한 책망이 섞인 것이요, 또한 맹인이던 사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의향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요9:28-29

바리새인들은 맹인이던 사람의 말을 듣자, 그가 자신들을 모욕했다고 여기고 흥분하여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나 근본도 없는 그의 제자이지,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직접 말씀을 들은 위대한 선지자 모세의 제자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어기고 사람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로 취급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같은 부류라고 폭언했으며, 모세야말로 하나님과 직통한 참 선지자이고 모세를 따르는 자신들은 정통 신앙인으로 흠 잡을 데 없이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한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생각과 말이 얼마나 모순이 많은 거짓된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그들이 모세의 제자였다면 모세가 예언한 메시아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며, 또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았던 율법과 계명과 모든 종교 의식과 제사 의식이 예수님과 관계있는 것이요, 예수님을 예표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모세와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모든 것을 그들의 종교적 목적과 권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모세의 제자라고 자랑했지만, 율법의 참 뜻도 모르는 채 외식하는 형식적인 종교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9:30-31

맹인이었던 사람은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면 할수록 예수님에 대해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많이 알지도 못하는 자기도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데 율법의 선생이라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한 깨달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믿고 있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의 관계’에 대한 진리를 말함으로 예수님을 옹호하고 예수님의 정당성을 인정했습니다. 그의 말의 요지는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는 들으시지 않고 경건한 의인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눈을 고치셨으니,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증거이고,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일 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요9:32-33

맹인이며 걸인이었던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모세의 제자라고 큰소리치던 바리새인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 중심, 율법 중심을 외치며 경건의 모양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지식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가식적인 가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리새인들의 높은 학식으로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아무런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맹인 거지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높아지고자 예수님을 적대시하다가 오히려 낮아져 자신들이 무시하고 멸시하던 걸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자신의 눈을 치료받아 앞을 볼 수 있게 되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확신이 서자 이전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리새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들의 거짓 진술과 계략이 환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점점 작아지고 자신이 커지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바를 말하며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눈을 돌리면 은혜가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면 진부한 일상이 하나님으로 가득한 일상이 된다. 바로 그 순간 그분은 수천만 통의 초대장을 보내고 계신다. 그분은 모든 일상을 초대장 삼아 자신을 영원히 즐거워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장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섭리를 이 땅 가운데 이루실 것입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 보내니라"

요9:34

맹인이었던 사람의 말에 바리새인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의 말이 어찌나 논리 정연한 지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바리새인들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만들고 화를 돋우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무식하고 비천한 자가 감히 우리를 가르치겠다는 건가? 율법에 정통하고 학식이 높고 지체가 높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이 자가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 들어? 참으로 괴씸하군!’ 하고 생각하며 그에게 인신공격을 했습니다.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이렇게 말하고는 그를 쫓아냈습니다. 여기서 쫓아냈다는 말은 출교 조치를 했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손상된 자존심과 체면을 다소나마 살리고, 또한 그를 백성들과 격리시킴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경성하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잠21:1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말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계를 받아야 비로소 뒤늦게 깨닫습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며, 교훈을 받으면 즉시 깨닫고 받아들여 지식이 더하고 더욱 지혜로워 집니다.

교훈이란 반드시 학식이 놓은 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연장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무식한 자가, 비천한 자, 나이 어린 사람이 교훈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배움에는 왕도가 없고, 또한 모든 사람이 내게 스승이 된다는 것을 알고 평생 배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영적으로, 지적으로 교만하여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죄인되었던 사람의 증언을 듣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학식 많은 지혜로운 자요,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요, 영적 소경으로서 백성들까지도 영적 소경으로 만드는 죄인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1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영적 살인 행위는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인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영혼을 죽음으로 이끄는 살인 행위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 밝은 영안으로 말씀을 보고 깨달아 말씀 위에 확고히 서 있어야 하며, 사람들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교훈을 잘 분별하고 받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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