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9:24-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요9:24두 번째 불러 이르되 : 바리새인들이 전에 맹인에게 묻기를 네가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 그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선지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 부모를 불러 물었는데 대답을 회피합니다. 왜냐고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면 출교하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서 유리한 증언을 받아내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어쩔 수 없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심문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눈을 고침 받은 일에 대한 영광을 인간인 예수에게 돌리지 말고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실대로 이실직고하여 진실을 밝히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해석 중에서 본 절은 후자의 경우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이어진 말, 즉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는 말이 뒷받침해 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미 예수님이 죄인이라는 강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선입관과 반대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선입관을 더욱 공고히 하고 예수님에 관한 것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뜬 기적도 그들은 부정적인 선입관에 맞추어 생각하여 무엇인가 속임수가 있다고 보고 그에게 사실대로 자백하라고 강요한 것입니다.
그 때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사람들을 회당에서뿐만 아니라 유대인 사회에서 내쫓기로 결의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바리새인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은 출교 당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 사역하시는 박천록 선교사님의 책 ‘사명’에는 현지인들이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알려지면 셋방에서 쫓겨나고, 논을 빼앗기고, 이웃으로부터 ‘사지를 잘라 죽이겠다’라고 협박을 당한다고 합니다. 무슬림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도 경찰은 무슬림 편을 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 버립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죽어도 나는 교회에서 죽지, 무슬림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라고 고백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무슬림의 핍박을 이겨 내고 성령을 사모하여 뜨겁게 기도하자, 질병이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선교사님의 세우신 몰라멕 교회에서는 16년간 무려 1만 명이 개종하고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 공원에는 ‘Freedom is not free’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가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값진 희생의 대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케나다 토론토의 풀 마샬 박사는 자신의 책 ‘그들의 피가 부르짖는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2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압제 아래 매일 매일 비밀경찰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 당하고, 옥에 갇히고, 처형 당한다. 하지만 이런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령께 사로 잡혔기 때문에 어떠한 고난과 핍박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네로 황제 이후 로마 제국은 200여년에 걸쳐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여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당시에는 전 로마 제국 인구의 8%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8%의 사람들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소수의 기독교인일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나라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9:25맹인이었던 사람은 자신을 심문하는 바리새인들이 듣고자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담대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이 대답은 예수님을 향한 옹호성 발언입니다. 그가 바리새인들의 의도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이처럼 예수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체험한 예수님의 권능이 그만큼 확실한 것이었고 그의 일생일대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출교의 협박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절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맹인이었던 사람의 신앙이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는 단지 피상적으로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의 눈을 고쳐 주었다고 말했는데, 바리새인들의 질문이 계속되는 동안 예수님을 옹호하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맹인이었던 자가 보여 주듯이 기독교 신앙은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고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에, 십자가 앞에 나아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새롭게 변화된 새 인생을 살 뿐 아니라, 날마다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며 계속 변화됩니다. 언어, 심사, 행동이 변화되고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