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9:8-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요9:8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보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묻기를 ‘랍비여 맹인으로 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 죄인 -의인, 저주 - 아브라함의 축복, 가난 - 부요, 질병 - 건강, 실패 - 성공으로 바꾸시는 일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믿음은 사건을 해석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했을 때 어려워하는 이유는 고난이 해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병이 들어도 그 고난을 해석할 수 있다면, 오히려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한 순간에 모든 비극과 절망을 복과 영광으로 바꿔 놓는 계기가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운명론이나 원죄론으로 핑계 삼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허무, 좌절, 소외감, 불평등, 고통 등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고 해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도쿄에 일본을 대표하는 미네노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사생아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미네노 목사님은 좌절하고 방황하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로 변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자기 출생의 비밀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사건이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맹인된 자에게 인생의 의미를 해석해 주셨을 뿐 아니라, 눈을 뜨는 복도 함께 주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뜨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크게 네 가지 분류로 반응을 보입니다.
첫째는 소경된 사람에 대해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요9:8-9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지 못했다면 가짜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동료, 친구, 친척들에게 아무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탈선했다가 결혼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전도 받아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화투하고 술 담배하는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심지어 자기 집에 그런 친구들을 모아서 화투를 하고 술을 마셨습니다. 하루는 그 분을 전도한 구역장님이 지혜롭게 조언을 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당신과 같이 술 마시고 화투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지 마시고 멀리 하세요. 순종을 잘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편을 구원해야 한다며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에는 늘 남편과 따지며 싸우던 사람이 그날 이후부터 남편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하게 순종을 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술을 사 오라고 했습니다. 술을 사 오니까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습니다. 남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말하기를 ‘예수 믿는 내가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생각하여 술을 끊기로 했습니다’라며 사이다를 마셨습니다.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얼마 후에 남편이 ‘너를 변화시킨 분이 예수라면 나도 예수를 믿고 싶다’며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면 주위 사람들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진정한 믿음은 사람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맹인이 눈뜨는 것 같은 일이 아니더라도,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버리며 인생을 뒤바꿔 버리는 영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럴 때 부모, 자녀, 친척, 친구들이 놀라고 당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신만 변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바로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일어났습니다.
옛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며 어둠의 자녀가 빛의 자녀로 되는 복이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느끼는 변화, 다른 사람들도 아는 변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고, 주변 사람들도 놀라며, 하나님께서 놀라시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바리새인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그들이 전에 맹인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요9:13-15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데려고 바리새인을 찾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는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종교 지도자였고 백성들의 멘토였기 때문에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그들의 해석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라 사람들의 마음에 안식일에 대한 율법의 문제가 걸려서 바리새인들에게 물어보려 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도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것을 보고 사건의 해석과 안식일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예수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사실인데, 이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평소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몰아붙였기 때문에 무척 당황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사건의 자초지종과 눈을 뜨게 한 사람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는 거침없이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그분이 진흙으로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여 씻었더니 눈이 떠졌습니다.”
이렇듯 복음은 간단한 것입니다. 귀신이 많은 사람은 생각도 복잡합니다.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은 아주 간단하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16절 말씀에서 보겠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9:16바리새인들도 두 가지 의견으로 나눠져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다’는 의견과 ‘병 고친 것을 보면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다’라는 의견으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16절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리새인들은 앞을 보지 못한 맹인이 보게 된 사실에 대하여 전혀 기뻐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분쟁을 했습니다. 심지어 눈을 뜬 맹인을 핍박하기 까지 합니다.
34절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쫓아내어 보내니라 -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출교 (사회적 매장)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는커녕, 눈을 뜬 날이 안식일이네, 뭐네 하면서 시비나 하고, 눈을 뜬 맹인을 핍박하기만 했습니다.
여러분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삶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십니까?
맹인 – 앞을 못 보는 맹인,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답답 - 편지도 일일이 읽어 주어야 한다), 컴맹, 은맹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는 맹인)
제일 답답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는 맹인입니다.
사고가 바뀌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는 은맹이 됩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은맹입니다
어떤 사회나 국가 조직이라 할지라도 변화되지 않으면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19세기 말은 세계적인 격동기였습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세계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고 변화를 잘 이루어내면 세계열강이 될 수 있는 그런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해서 세계열강이 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은 안타깝게도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세계 역사에 안목이 없었던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수했고, 수구세력들은 자기들의 이권지키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결국 나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아도 변화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625가 있었던 1950년대 초에 한국의 국민소득은 60달러. 그때 한국을 돕기 위해 파병했던 필리핀은 국민소득이 800달러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필리핀은 변화에 실패하여 경제 후진국이 되었습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의 경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9년에 이미 세계 10대 부국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과 현금을 보유한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변화에 실패하여 지금은 최장기 경기 침체를 기록하여 세계적인 채무국이 되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여기서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은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변화를 요구합니다. 복음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국가를 변화시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