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따르는 자에게는 생명의 빛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따른다는 것은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따름의 조건이요, 따름은 믿음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르기 위해서는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따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심을 알려면 먼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나를 따르라’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한 곳에 머무르는 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믿음은 계속 나아가는 행동입니다. 믿음은 전진하는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하고 말씀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두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말씀 속에는 굉장한 긴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믿으라고 할 때에는 별로 그렇지 않은데,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에는 그 말씀 안에 또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긴장감이 감도는 것을 느낍니다.
따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한동안 가정을 떠났습니다. 직업도 포기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을 내놓고 따라야 했습니다. 막8:34은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값을 치르는 삶이 있어야 함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8:34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 저편으로는 회의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시라면 내 마음도 밝아야 되고, 내가 보는 것도 환해야 하고, 내 인생길에서 어두움이 맴도는 그런 불행한 모습이 없어야 하는데, 왜 나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답답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따르는 일에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과연 자기를 부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데 십자가는 전부 다 벗어던지고 그냥 편하게 예수 믿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유령처럼 나타나셔서 우리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 주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밝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그리고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성경 말씀이 주의 등불이요 빛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배워야 합니다.
종교 개혁이 한참 일어나던 16세기 당신에 제네바를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로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생명을 걸고 개혁을 했던 존 칼뱅은, 제네바 시의 모토를 ‘어두움 후의 빛’이라고 정했습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자는 의미입니다. 칼뱅과 그의 동역자들은 제네바 시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이 오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541년 제네바 시의 규정을 보면, 설교자는 일주일에 6번 설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에서 적어도 6번은 꼭 설교를 듣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듣고 배워야 눈이 열리고, 듣고 배워야 빛을 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심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그의 말씀을 바로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갔을 때 그들은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주저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생명인 줄 알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빛이심을 알기 원합니까? 그 빛을 보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배우면서 깨달으십시오. 깨달을 때 그 빛이 내 마음을 비추며 내 발에 등불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어두움은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영적인 무지와 악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무서운 영적인 흑암을 가르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어두움은 사회의 말초 신경까지 파고들어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이 사회를 캄캄하게 만드는 이 무서운 어두움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2"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요12:35"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요12:46이것이 바로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더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단순히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을 빛으로 몰아내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면 어두움에서 헤매지 않게 됩니다. 영안이 활짝 열립니다. 선와 악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무엇인지, 좁은 길이 무엇이며 넓은 길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손이 어느 것인지 세상의 손이 어느 것인지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기로에 있을 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분명하게 그 답이 나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활동하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디시전 (Decision)’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실린 실화입니다.
캘리포니아에 벤추라 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이사를 온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자녀가 두 명이 있었는데, 둘 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낯선 곳에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일일이 설명을 했습니다. ‘얘야, 여기는 철조망이 있어. 조심해야 돼. 이쪽에서는 길이 굽어져 있단다. 여기는 길이 두 개 나 있는데 오른쪽은 차도니까 조심해야 돼’ 아이들에게 얼마 동안을 가르쳤습니다. 얼마 후에 아이들은 엄마가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아도 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던 아들 다니엘은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엄마가 하는 말을 소홀히 여기고 앞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딸 아이 게일은 엄마의 말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왜냐하면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게일에게는 엄마의 말이 생명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가르쳐 준 말씀을 마음에 담아서 그 말대로 길을 따라 학교를 다녔습니다.
얼마동안 두 아이가 학교를 잘 다녔는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짙은 안개가 그 마을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약간의 시력으로 그 동안 자신만만하게 걸어갔던 다니엘은 짙은 안개 속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보도 블럭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담장에 부딪힐 때마다 비명을 지르다가 나중에는 누나의 손을 꼭 잡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전혀 못 보는 게일은 안개가 끼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만 발을 옮겨 놓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니엘처럼 앞을 조금 본다는 사실 때문에 엉뚱한 자신감으로 길을 걸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건성으로 듣고, 말씀을 읽어도 대충 읽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고 안개가 덮여서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마음의 등불로 간직하는 사람은 어두움이 가릴 수가 없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5-6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어린 게일이 엄마를 인정하고 그 말을 마음에 담고 길을 걸었을 때 안개가 그의 길을 막을 수 없었듯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를 어두움에서 인도할 뿐 아니라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만 믿으면 죽음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게 되며, 마지막 심판을 피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세상에서 생명의 환희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축복을 누리게 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 죽음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드디어 빛을 보고 삶의 의욕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이웃들의 눈을 부시게 할 만큼 밝고 기쁘게 사는 사람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저는 이런 축복도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이러한 생명의 빛이 필요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에는 나와서 앉아 있지만 삶이 지친 분도 있습니다. 등잔의 불꽃이 사그라지듯, 살고 싶다는 의욕이 자꾸 사그라지고 힘이 없어지는 분도 있습니다. 몸의 질병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자식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가정이 깨지는 아픔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왔지만 찬송을 부를 힘도 없고, 설교도 잘 들어오지 않고, 그저 살고 싶지 않다는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분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길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생명의 빛을 받으면 이 세상을 누구보다도 밝고 환하게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분을 따름으로 생명의 빛이 주는 감격과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