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명절 끝 날은 초막절 끝 날을 말씀하는 것으로, 명절 끝 날은 일주일간의 초막절 축제를 마감하고 성회로 모이는 제8일을 가리킵니다. 바로 이 초막절 마지막 날 사람들이 명절의 대미를 장식하는 큰 잔치를 벌일 때 예수님께서 무리 가운데 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를 알면서도 이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들 가운데 나타나 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말씀을 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 7장은 바로 이 말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유대인들이 천 년이 넘도록 지켜 온 초막절도 바로 이 말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큰 절기가 세 개 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을 다른 말로 하면 장막절이라고 합니다. 초막이나 장막이라는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천막입니다. 천막 절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막절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첫째, 초막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초막에서 생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면서 그들의 사활을 좌우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물입니다.
광야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먹일만한 물이 없었습니다. 물을 구하지 못하면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쓰러져 죽습니다. 양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그들이 물이 없어서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셨습니다. 반석에서 나온 기적의 생수,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 초막절마다 그것을 기념했습니다. 그것이 초막절입니다. 일종의 민족 축제와 같은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해에 세 번 추수를 (초실절, 오순절, 초막절) 하는데 마지막 추수 때가 초막 절기입니다.
첫 번째 추수는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무교절 (7일) 기간 중에 안식 후 이튿날에 그 땅에서 첫 번째로 맺는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초실절에) 흔들 것이며"
레23:10-11두 번째는 오순절 (칠칠절)입니다.
초실절로부터 7주가 지난 다음날 (50일째 되는 날)에 추수한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입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초실절로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오순절, 칠철절입니다)"
레23:15-16세 번째가 장막절 (수장절: 곡식을 거두고 저장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레23:39-40장막절은 지금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것입니다. 일년 중 마지막 추수 때, 그동안 하나님께서 비를 주셔서 농사를 잘 짓게 하시고 풍성케 하신 것을 감사하며 일주일간 하나님 앞에서 제물을 바치며 축제를 갖습니다.
초막절에는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습니다. 그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 것이 일반적인 데, 초막절에는 물을 붓습니다.
초막절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 새벽에 제사장이 이끄는 행렬이 실로암 연못에 가서 황금 물 주전자에 물을 떠다가 수문(Water Gate)을 거쳐 제단으로 와서 물을 붓습니다. 물을 부을 때, 그들은 이사야서와 시편의 말씀을 낭송하면서 축제를 즐깁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 곧 큰 날에 모든 축제가 절정을 향해 갈 때, 사람들이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고 춤을 추며 감사하고 감격할 때, 예수님께서 서서 무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말씀의 특징은 초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초청의 책입니다. 비록 사람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죄악된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초청은 저녁에 밥 한끼 같이 먹자는 식의 부름이 아니라 영원, 축복, 행복에의 초대입니다.
초청이란 반갑고 좋은 것입니다. 초청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구나. 나는 중요한 사람이구나. 나를 파티의 주인공으로 불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반대로 달갑지 않고 부담스러운 초청도 있습니다. 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초청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청은 절대로 부담스러운 초청이 아닙니다. 절망, 혼돈, 흑암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을 주시는 초청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아주 값지고 의미 있는 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 말씀을 다시 주목해서 보십시오. ‘서서 외쳐’라는 두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겁니다. 또 큰 소리로 초청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초청하시는 분의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너를 확실히 불렀다’고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 축제 중에 일어서서 큰 소리로 부르신 것은 초청의 긴급성을 말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시고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37절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초청의 핵심은 오라는 것입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절망하는 자 등 모두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초청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초청하고 계십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만을 초청하지 않으십니다.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병들었거나 건강하거나, 실패한 자나 성공한 자, 무명인이나 유명인, 백인이나 흑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목마르면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십니다.
우리 또한 초청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주님의 초청의 대상입니다. 주님께로 와서 목마른 인생을 해결할 수 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초청의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내게로 와서 마시라’입니다.
이사야서 55장에도 이와 비슷한 초청의 말씀이 있습니다.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55:1-2주님의 초청에는 돈이 들지 않으며 어떤 희생이나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습니다. 은혜는 공짜입니다. 은혜는 너무 귀하고 비싸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공짜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싸다라는 뜻과 너무 귀해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을 값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집안에서 빨래하고 청소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예 값을 매기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너무나 값어치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겐 공짜로 주십니다.
2022년 1월 21일 오전 6: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