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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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요7:32-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께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7:32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양분된 사람들의 반응과 수군거림은 이 적대 세력이 가진 그릇된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대제사장들과 의견을 나눈 뒤 예수님을 잡아들이기로 하고 아랫사람들, 즉 성전을 지키는 군인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께 가장 적대적인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를 때에는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이 그들의 야욕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면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박해가 있어도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의 초점이 또렷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사람을 바라보며 서로의 약점을 들춰내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의심이 들어오고 원망과 불평이 찾아옵니다.

신약학 교수이며 미국 그레이스 장로 교회에서 시무하시는 윌리엄 B. 버클레이 목사님은 그의 저서 만족의 비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투덜거림과 불평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불신자는 근본적으로 불만족하는 자들로서, 이 세상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갈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투덜거림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만들어 버린다. 불신자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불평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사는 사람의 입술에 원망과 불평, 수군거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의 삶을 얻게 된 사람의 입술에 낙심과 절망의 탄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요7:33-34

33-34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세 가지를 설명하십니다.

첫째로 내가 너희와 조금만 더 있겠다고 하십니다.

둘째로 나를 보내신 이(하나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고 하십니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그때는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천국에 가시지만, 그들은 지옥에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래지 않아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얼마 있지 않으면 십자가 고난을 받아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는 말씀을 믿습니까? 천국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질병, 실패, 절망 등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주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걸림돌이 되고 갈등과 혼돈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과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요7:35-36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몰라 서로 물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기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이 감겨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어느 곳이 아닌 천국에 올라가신 다는 것을 결코 깨달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믿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놀라운 말씀들을 결코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홍해를 가르신 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일을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20세기의 선지자로 불리는 A.W. 토저 목사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지만 문자의 계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자의 계시가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려면 먼저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지식의 습득이 아닌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보아야 진리가 보인다.

저명한 성경 연구가인 아더 핑크 목사님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신앙의 사람과 불신앙의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불신자는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세상적 기준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인생을 시간과 감각의 차원에서 바라보며, 모든 것을 자신의 현세적인 손익에 따라 계산한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영적 기준으로 판단하며, 인생을 영원이라는 차원에서 본다. 신앙인은 이렇게 함으로써 폭풍의 와중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육신의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깨어지고 낮아진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 보화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1월 20일 오전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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