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요7:27-2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요7:27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그가 갑작스럽게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갑작스럽게 나타나리라고 믿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3:1는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볼 때 그리스도의 출현은 갑작스런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에 대한 말씀이 전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결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출현이 갑작스럽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30세가 될 때가지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 불필요한 호기심을 발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출생이 그렇게 돌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의 부모를 아는 자들도 있었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나중에 거의 그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호칭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이미 다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 일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들이 나사렛의 한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타난 것을 압니까? 그들이 호적하려 베들레헴에 간 요셉에 대해, 예수님이 그곳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에 대하여 압니까?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은 헤롯의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신하고, 베들레헴의 수많은 아기들은 무참히 학살 당한 사건을 압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30이 되기까지 묵묵히 집안 일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이 얼마나 큰 겸손이며, 그분이 어느 날 돌연히 광야에 나타나셔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시작한 것에 대하여 그들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들이 아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오직 요셉과 마리아를 알고 있으며 그가 나사렛과 가버나움에서 컸다는 사실을 아는 것 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피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정반대되는 결론을 내리게 했습니다. 얼마나 똑똑하고 당당합니까? 그들은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가 어떻게 오실 것이며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피상적인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후에 몇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교인들이나 목회자 모두 성경에 대하여 너무나도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는 것이 극히 피상적이고 미신적인 것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인들이 진리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인정하는 미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잘 아는 것 같은 유대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지극히 피상적인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그리스도가 홀연이 임하신다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오시는 것이 홀연이 임하시는 것입니까? 성전 꼭대기에 밧줄이라고 매어 놓고 서커스 하듯이 내려오는 것이 홀연히 임하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출현 자체가 갑작스런 하나님의 방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늘 간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분이 친히 사람의 몸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늘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갑자기 찾아오셨습니다. 물론 밧줄을 타고 내려오신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그리고 홀연히 인간 역사의 현장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늘 간접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직접 통치하시겠다고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의 나타나심이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돌연한 출현이 아닐지 몰라도 인간 역사 전체로 보면 돌연한 출현이요, 모든 인간의 복종과 순종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왕이 어느 고을을 다스리는데 늘 총독을 세워서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 총독을 재치고 직접 세금을 걷고 직접 그들의 송사를 들으며 직접 그들을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연한 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사시다가 서른이 되어 나타나셨건, 아니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셨건 나타나신 것 자체가 돌연한 출현이요, 하나님이 직접 통치를 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요7:28-29유대인들이 예수님에 관하여 알고 잇는 지식과 정보는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으며, 외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단 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 주신 다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큰 소리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먼저 ‘너희들이 나에 대해 안다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보내신 분이 따로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너희는 나를 보내신 분이 누구이신 줄 모르지만 나는 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피상적인 지식이나 눈에 보이는 제한적인 정보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출신과 가족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이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예수님을 보내신 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영적인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닌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 수 없고, 그의 삶에 어떠한 변화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권능 넘치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도 육신적인 차원에서만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결국 예수님 곁을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도 결국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고, 나머지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곳까지 따라간 사람은 사도 요한 밖에 없었습니다.
주후 2세기 무렵 로마 제국이 초대 교회를 박해할 때 기독교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에 맞서며 기독교 신앙을 이성적, 학문적으로 변호하려고 한 기독교 변증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순교자 저스틴입니다.
그는 본래 이교도 집안 출신으로, 기독교가 아닌 헬라 철학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던 사람입니다. 진리에 목말랐던 그는 스토아 학파, 아리스토 텔레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 신 플라톤 학자 등 당대의 유명한 헬라 철학 학자들을 차례로 찾아갔지만 그의 영혼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스틴이 해변을 거닐다가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은 ‘철학이 인생에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오?’라고 물었습니다.
져스틴은 ‘철학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으며, 행복은 이런 지식과 지혜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철학자들보다 더 일찍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그들이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당신의 능력으로는 진리를 알 수 없소.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신 분, 즉 메시아를 통해서만 진리를 알 수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저스틴은 이 말을 들을 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영혼이 불붙은 것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전에 쫓아다니던 철학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다가 순교하게 되었는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 복된 일이요, 나의 바라는 바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진실한 신앙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와같이 순교자 저스틴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진실로 깨닫고 경험한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앙이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신앙은 잡히기 전까지는 뜬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이 잡히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보 같이 보이고 믿음을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포기하고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주위를 맴돌며 자꾸 기웃거리게 됩니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2022년 1월 18일 오전 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