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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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요7:5-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하여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7:5

5절 말씀은 예수님의 형제들의 생각을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팎을 돌아보면 예수를 가장 잘 믿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안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자녀들이 이상하게도 신앙생활에서 겉도는 것을 봅니다. 믿음이 좋기로 소문난 장로, 권사 집안의 자녀들이 교회와 담을 쌓고 세상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눈물겹도록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아내를 둔 남편이 끝까지 믿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환경이 좋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예수를 잘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믿어야 되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믿을 수 있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마음에 반항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후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자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소위 학벌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남을 가르치려면 랍비 칭호를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요사이 말로 하면 교사 자격증입니다. 그때는 이것에 특별히 더 엄격했는데 예수님은 랍비가 아니셨습니다.

유대인의 랍비학교는 특이합니다. 그 학교는 졸업장도 없고 학위도 없습니다. 다니다가 함께 있는 동료들이 랍비로 인정을 해줄 때 비로소 랍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다녀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10대나 20대에 랍비라는 칭호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굉장한 뉴스가 될 만큼 대단한 존재로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학력이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목수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니, 사람들이 볼 때 ‘어디서 배웠지?’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서신서를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시대는 학벌이 좋으면 인정을 해주는 풍토였기 때문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는 것은 일류대학을 나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같은 학벌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못된 반항 의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출생지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메시아는 어디서 출생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신비스럽게 이스라엘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신비주의 사상이 이스라엘 민족 속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이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자기를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것을 용납하고 가만히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메시아라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만큼 신비스러운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저 예수라는 사람은 나사렛에서 온 것을 우리가 잘 알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자가 자기를 메시아라고 할 수 있느냐?’

그리고 구약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예언되어 있는데, 나사렛 출신이 어떻게 자기를 메시아라고 할 수 있느냐?’고 제법 유식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형제들조차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것을 훤히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나무라지 않으시고 한 마디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요7:6

‘내 때’가 있고 ‘너희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때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된 메시아요, 구원자요, 왕 중에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사실을 선포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믿고 경배하게 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아직 그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어 들림을 받아 그분이 참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28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도 때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답변하십니다. 어쩌면 굉장히 매정하게 들릴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기적을 베풀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기적을 베풀 시간을 조절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당장 기적을 보여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래서 금식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압박해 갑니다. ‘나는 급한데, 하나님은 왜 천천히 가십니까? 왜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십니까?’하고 조급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이제 기적을 베풀 때가 서서히 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을 통해 ‘때’에 대해 자주 언급하십니다.

12장 23절에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을 때란 영웅처럼 대접받고 환영받는 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가 왔다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을 때 영광, 기적, 구원 등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광의 클라이맥스를 박수와 성공에 두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달리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이란 ‘시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구원도 시간의 이해에서 비롯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나의 시간표를 맞추는 것이 영적 통찰력이고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게 될 때에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이해하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움직임도 하나님의 시간이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옳습니다’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예기치 않은 고난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께서 옳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을 통해 영적 통찰력이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7세기가 낳은 스페인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다림을 배워라. 성급한 열정에 휩쓸리지 않을 때 인내를 지닌 위대한 심성이 드러난다. 길고 긴 기다림이 끝나면 계절은 완성을 가져오고, 감춰진 것을 무르익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채찍’으로 길들이지 않으시고 ‘시간’으로 길들이신다.”

미국의 기독교 방송 진행자이자 저술가인 조이스 마이어 역시 하나님의 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하나님만큼 인생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신속히 응답하시기도 하시만, 때로는 우리가 거룩한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무슨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조급증이나 좌절감, 실망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을 존중하고 감사하며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께서는 무대 뒤편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2022년 1월 1일 오후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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