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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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7: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하여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요7:1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전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보다는 말씀이 주로 기록되어 있고, 7가지 표적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고, 갈릴리 사역보다는 예루살렘 사역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왕도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왕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한편 공관복음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한 갈릴리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4:12-16

요한복음 5장에서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6장으로 넘어오면서 갈릴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실 무렵은 봄철이었습니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스라엘 땅에서 4월은 일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곳 라스팔마스처럼 건기에는 풀 한 포기 구경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3, 4월이 되어 우기가 시작되면 온 땅에 풀이 돋아나고 야생화가 피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뽑냅니다. 또 4월이면 보리가 여기저기서 누렇게 익어갑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향긋한 계절에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가 7장으로 넘어오면 계절이 가을로 바뀝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초막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입니다. 유대력은 음력인데 한국의 음력과 거의 1달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유대의 초막절은 한국의 8월 대보름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6장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사건에서 7장으로 넘어가면서 반년이 흐른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기간 동안 사역하신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왕의 복음), 마태복음 12장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하셨던 모든 내용을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마지막 부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그들의 시도가 좌절당하자 예수님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피와 살을 먹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을 소화하지 못하여 주님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만큼 슬프고 외로운 일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다 떠나 버리고 예수님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처지는 사면초가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제는 마음 놓고 갈 데도 없어졌습니다. 고향인 갈릴리에서조차 마음대로 행동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에는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도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특히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요7:1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느니라 는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요7:2

예수님께서 이처럼 딱한 형편에 놓이게 되었을 때는 절기상으로 초막절이 가까워 오는 시기였습니다.

초막절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지키던 절기였습니다.

첫 번째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 가까이 생활을 했던 광야의 그 고통스럽고 무서웠던 때의 역사를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지켰습니다.

두 번째는, 그 무서운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는 의미에서 지켰습니다.

풀 한 포기도 자라기 어려운 삭막한 광야에서 40여년을 살았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초막절은 그곳에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런 명절을 맞이하면 세계 각처에 있는 경건한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입니다.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 (수장절은 곡식을 거두어 저장한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고, 다른 이름으로 초막절인데, 이는 수장절 기간 1주일 동안 반드시 초막을 짓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입니다)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출23:14-17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요7:3

예수님께는 형제 넷에 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마13:55-56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기 전까지 약 30년 동안 그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이들 중 한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믿어야 할 처지에 있었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우리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십니다. 그 육신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잠깐 만났다가 헤어지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몇십년을 함께 자란 형제들이 예수님에게서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이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후 2년 가까이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고, 가난한 자들과 창녀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형제들이 이것을 다 듣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를 믿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아한 부분입니다.

시편 기자가 탄식한 대로 예수님은 가정에서 어려움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시69:8

이렇게 꼭 믿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믿지 않으면 그 마음이 강퍅해 집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빈정거립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7:4

성경에는 굉장히 점잖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읽어보면 사실은 빈정거리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형제들도 마음에 큰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서 갈릴리 외각을 돌아다니고 있는 형님을 볼 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에게 그들의 불만스러운 감정을 표현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내용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형님,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집안에만 묻혀 있어서야 되겠어요? 지금 예루살렘에는 초막절이 되어서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이 기회를 왜 놓칩니까? 거기 가서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인 것과 같은 기적을 한번 더 행해 보세요. 그러면 인기가 당장에 회복될 것이고 사람들이 형님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넓은 무대에 가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해 보세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동생들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예수님의 형제들과 똑같은 주장을 펴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도 그런 배경에서 태어난 작품입니다. 인간 예수는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현대인으로서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신 휴머니스트로서 예수는 좋은데, 물위를 걸었다거나 부활했다는 얘기 등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형제들도 같은 생각으로 반응했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보혈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2:14-15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1:7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9:22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1:18-19

이와같이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보혈인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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