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6:68-7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하여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너희도 떠나려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매우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68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6:68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아직 베드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3년을 같이 지냈어도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부활하실 때도 몰랐습니다. 육적인 믿음, 인간적인 믿음, 자기중심의 믿음을 갖고도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녔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베드로가 영적인 믿음을 갖게 된 시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했을 때입니다. 그 전까지 베드로는 왔다갔다, 이랬다저랬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육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결코 팽개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아끼시고 진실한 믿음이 생길 때까지 보살펴 주십니다. 이게 사랑이며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가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에 비슷한 내용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자, 순식간에 베드로가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이상한 말을 꺼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어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것을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즉시 인간적인 믿음으로 돌아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못 하리이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사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육적인 믿음이 있는데, 주일 아침 일찍 교회에 온 것을 보면 분명 기적입니다. 그리고 예배하며 설교도 듣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다 깨닫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습니다. 때로 ‘주여,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하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에 나가면 모든 것을 잊고 옛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육적인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며 책임도 맡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한 순간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68절 말씀에서 베드로는 또 한가지 일을 해냈습니다. 예수님을 ‘주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신약 공동체의 핵심적 신앙 고백은 ‘주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69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요6:69예수님 옆에 있던 베드로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베드로에게 신기한 게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믿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믿고 아는 것이 있고, 알고 믿는 것이 있습니다. 알고 믿는 사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경험적인 사람입니다. 모두 알아보고 난 후 이해가 되고 경험상으로 동의하며 합리적이면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믿을 듯 하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알고 믿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믿고 아는 사람’은 다릅니다. 알고 나서 믿을 것인가, 믿고 알 것인가 하는 차이입니다.
성경은 후자를 말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어야 합니다. 천지가 창조된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사7:9에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으니 그 후에 모든 것이 이해되고 풀리는 것입니다. 순서는 먼저 믿고 다음에 아는 것이며, 먼저 받아들이고 다음에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성이 먼저인가 믿음이 먼저인가라는 주제 앞에서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믿고 알았다고 합니다.
믿음은 이성을 인도합니다. 믿음은 지성을 낳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감정을 조절합니다. 믿음이 우선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님의 믿음, 말씀에 기초한 믿음, 은혜의 믿음이 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믿음이 이성을 조정해야 합니다. 믿음이 지성을 통제해야 합니다. 참 믿음, 성령으로 난 믿음, 말씀으로 난 믿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이 삶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어떤 어려움과 시험과 난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70, 71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6:70-71베드로를 필두로 하여 12 제자는 믿음의 결단을 하였지만, 애초에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하게 된 것은 예수님이 선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들을 일일이 택하셔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참으로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이는 장차 예수님을 팔 가룟 유다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가룟 유다가 마귀는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마귀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마귀의 도구가 되어 마귀가 사주하는 일을 할 것을 예견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예언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때가 되자,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고, 가룟 유다는 마귀의 사주에 넘어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고 온 천하를 장악하려던 마귀의 성공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완전히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사망과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온 세상의 구세주요, 영원한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2021년 12월 30일 오전 6: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