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6:64-6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하여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요6:64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훤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눈 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 많은 사람이 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참 성도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성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고, 곡식과 가라지가 동시에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곡식이고 누구 가라지인지 알 수 없으므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13:24-30그래서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께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넣으실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6:65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이성, 지식, 의지, 노력으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 이라"
엡2:8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믿음이 마음 속에 꽉 들어차면,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고,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믿습니다’하는 탱크 같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6:66오병이어 사건 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매료되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난 뒤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후로 그들이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육신의 필요를 채워줄 양식이나 이스라엘의 독립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떡을 먹어야 된다고, 그들이 알아듣기도 힘든 말씀을 하시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것이 신앙에 도움이 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반드시 신앙을 성장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기도와 말씀이 빠진 채 기적만을 바라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이유는 기도와 말씀 생활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눈앞에 닥친 문제가 놀랍게 해결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이전보다 더욱 굳건히 믿음 위에 서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수설 들불, 임꺽정, 연개소문, 대조영의 작가 유현종 장로님은 자신을 가리켜 예수님을 두 번이나 배신한 ‘요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장로님은 어릴 때 새벽마다 들리는 교회 종소리가 좋아서 스스로 교회를 찾아가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40일 작정 새벽 기도를 드리고 한 달간을 더 기도로 매달렸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자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로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장로님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청년 시절에 우연히 전도사로 사역하던 친구의 서재를 구경하다가 가룟 유다의 배신에 관한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유다의 모습이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글에 담아 ‘유다행전’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것이 문단의 주목을 받아 크게 성공했습니다.
장로님은 곧 들불, 연개소문 등의 소설을 발표했고, 계속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정으로 몸과 마음이 분주해지면서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두 번째 배신은 고난이 아닌 축복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장로님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장로님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고, 이 일을 계기로 다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이 “저의 죄 때문에 생긴 병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고백하며 물고기 배 속에 있던 요나처럼 회개하자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가 임했습니다.
장로님은 다시금 새 생명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이 물밀듯이 일어나 곧 사도 바울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또한 목사님을 도와 개척 교회를 세우고 열심히 섬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장로님은 지난 날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때 차라리 유다행전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더라면 더 빨리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공을 경험하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지난 30여 년 동안 구경꾼 신자, 가짜 신자 노릇만 한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의 황혼기만이라도 지나간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일에 제 삶을 모두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6:67이제 예수님의 곁에 남은 사람들은 열두 제자뿐이었습니다. 이만명이 넘는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지만 결국 열두 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실망과 고독입니다.
둘째, 믿음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과 인간 중심의 믿음 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은 주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믿음은 내 생각, 이성, 경험, 감정 중심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육적인 믿음, 인간적인 믿음입니다.
처음부터 영적인 믿음을 덧입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인간적인 믿음에서 시작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교회에 와서 보니 좋아서 열심히 모임에 참석하고 설교도 듣습니다. 아직까지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설교가 마음에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도 헌신도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가십시오. 그러면 육적인 생각을 뿌리치고 영적인 믿음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이때 시험과 갈등이 찾아와 여러 가지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가 편한대로 살다가, 하나님 중심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니 육신과 이성이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은 자꾸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는 그저 교회에만 왔다 갔다하는 시기입니다. 육적인 믿음이 영적인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은 자아를 깨고 포기하며 죽이는 것으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들은 굉장한 것 같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육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단연코 영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시면, 알 것 같으면서도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군거리며 모두 떠나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해서 모두 옳은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님의 음성에 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좋아서 하나님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어떤 사람이 싫어서 하나님까지 싫어하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인간적인 믿음을 보시고 ‘너희도 가려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나의 생각, 경험, 이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음성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육적인 믿음을 버려야 영적인 믿음이 생겨납니다. 이런 일은 쉬운 것이 아니지만, 진짜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 영적 믿음, 말씀에 기초한 믿음, 성령의 역사로 생긴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이 닥쳐와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