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요6:30-32
어떤 선생님이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등을 두드립니다. 선생님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이것을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서 격려해주시려고 등을 두르려주시는구나’
그런데 정신 나가 애들은 ‘선생이 왜 학생을 때려? 폭력 선생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잘못된 것이지요. 속뜻을 알아야 합니다. 때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 속뜻을 아는 것이 바르게 응답하는 사람의 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그 사건의 깊은 뜻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계속 표적을 보여주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6:30지금 이 질문을 한 때가 언제입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표적을 행하신 다음날입니다. 너무도 터무니없지 않습니까? 바로 하루 전에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도 믿지 않으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또 다른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도대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으면 됐지, 또 무슨 표적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인간들은 더 많은 이적, 더 많은 표적을 보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자에게는 무슨 표적을 보여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을 할 때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목격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매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본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다 목격했습니다. 표적을 본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었는가 하면 아닙니다. 보는 것이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2-24그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만나, 먹는 것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6:31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땅의 양식은 썩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매일 먹어도 다시 배가 고프고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목마른 한 여인에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4:13-15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는 것처럼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양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는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 양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매일 먹는 썩는 양식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은 평생 동안 매일 먹어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것을 썩는 양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양식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일차적인 관심은 먹이입니다. 종족 번식과 생존을 위한 먹이 사냥이 전부입니다.
둘째, 매일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셋째,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우리는 땀을 흘리며 수고한 만큼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으며 거저 얻는 양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양식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때로는 전쟁도 불사합니다. 결국 전쟁은 양식 쟁탈입니다. 사람들이 식탁을 꽃으로 장식하고 멋진 대화를 나누며 고상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지만 결국 관심은 먹는 것에 있습니다. 주린 창자를 만족시키려는 것이 양식의 특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양식을 썩는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한 끼라도 양식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양식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충고하십니다. 우리가 썩을 양식을 위해 산다면 동물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5, 26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6:25-26본문 말씀에서 또 다른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구약에 만나라는 양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만나는 아주 독특하고 놀라운 음식입니다. .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출16:13-16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백 여 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40년을 광야에서 보냅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화려한 문명 아래 있지만 역시 광야 생활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만나로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의 말을 들으신 후 그들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요6:321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모세가 만나를 내리도록 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도 모세와 같은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후 40년간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분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2하나님께서 주시는 떡은 그냥 떡이 아니라 참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육신의 배고픔뿐 아니라 영적 갈증도 채워주는 생명의 떡이라는 의미입니다.
만나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일하고 노력해 얻은 결과이지만 만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신 음식입니다.
2매일 만나를 주셨습니다. 귀찮아도 매일 음식을 먹어야 하듯이 만나도 매일 주셨습니다.
3우리가 일용하는 양식과 성격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만나를 먹는다고 영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도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지만, 그것을 먹어도 사람들은 영생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만나는 영원한 생명의 떡을 예표하는 양식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먹으면서,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주실 메시아를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