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27-29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가 구하려는 것은 썩은 양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신 진의는 단순히 허기진 그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그들이 영생하는 양식을 얻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배를 불린 썩는 양식을 구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배를 채우는 양식을 썩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썩는 양식은 먹을수록 배가 고픕니다. 계속 먹어야 하는 것이 썩는 양식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세끼 썩는 양식을 위해 일생을 바쳐 세상에서 생존 경쟁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썩는 양식은 인간만 먹는 게 아니라 동물들도 먹습니다. 그래서 썩는 양식을 먹는 사람은 동물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끔 여행을 하면 자연의 신비에 접합니다. 아름다운 새들이나 짐승들을 보고 탄성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새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그들의 초점은 단지 하나입니다. 무섭도록 집요하게 먹을 것을 찾습니다. 사자나 표범 등이 달리는 이유는 먹을 것을 잡기 위함입니다. 한쪽 다리를 들고 고상함을 묵상하는 학도 개구리가 지나가면 순식간에 돌변하고 맙니다. 동물의 세계는 먹을 것과 성 두 가지 뿐입니다.
인간의 세계도 이 두 가지로 요약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동물처럼 본능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썩을 양식도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반이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받은 충격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보면 체면도 인격도 다 버리고 달려듭니다. 지상에서 가장 추악한 인간은 먹는 것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자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추악한 정치는 식량으로 인민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썩을 양식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참된 목적은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의 양식에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썩을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양식’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은 육신을 위한 양식에 대해서는 경험도 많고 준비도 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위한 영생의 양식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투쟁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선물은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치심으로 약속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침은 보증이나 확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인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약속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주님을 바라보면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과 북한에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연변 과학 기술대학교 정진호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연변과학 기술 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평양 과학 기술 대학교 설립 부총장을 맡아 2010년 개교하기까지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지만 유학길에 오르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MIT 대학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요6:27의 말씀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이 썩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의 양식만 좇아다니는 무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앞으로는 영생하도로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94년에 자리를 옮겨 연변과학 기술대학교 교수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평양 과학 기술대학교 프로젝트 팀을 맡아 일을 하면서 틈틈이 북한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이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떡만 기대하는 북한에 생명의 떡을 전하는 일은 말 그대로 떡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떡의 전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생의 모드를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에는 적어도 두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째로 내 손에 있는 떡을 내려놓는 일과 둘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떡을 붙드는 일이 그것입니다.
내 손에 이미 있는 떡을 내려놓는 일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생명의 떡을 붙드는 일에는 용기를 넘어선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보여주시지 않는 미래 속으로 내 존재를 던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을 찢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영원한 생수이시고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먹고 마시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진리는 알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먹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이 힘이 없고 나약한 까닭은 객관적인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피와 살이 되지 못한 철학, 사상, 지식 등은 뜬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영적인 것은 내 안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이룹니다. 이것이 ‘믿음의 떡’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까?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수많은 무리와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나의 생각 안에 자리 잡고, 인생 삶에 자리 잡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환란을 당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정적이고 착각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믿음, 부활의 믿음이 내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28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8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관심은 행동, 행위라는 것입니다. 인간 죄성의 뿌리에는 언제나 행위가 있고 공로의식이 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 보상을 받으려는 의식이 내재돼 있습니다. 행함으로 만족과 기쁨을 누리고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하려는 불신앙이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떤 젊은이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29이 구절은 이렇게 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기만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예수님이 말씀에는 예수를 믿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데는 공로나 선한 행위가 전혀 필요 없으며,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그 믿음이 하나님에게는 선한 일로 인정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4:4-5만약에 일을 해서 삯을 받으면 그것은 결코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선한 행위나 공로가 없을 지라도, 그런 사람을 의롭다 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이를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일한 것도 없이 하나님에게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인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할 일을 예수님께서 이미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있는 모든 선한 행위를 예수님께서 이미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죄의 댓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죄악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내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예수님이 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사랑을 받기 위해 무언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 하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다 해주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 이것은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이 강조한 복음의 진수이기도 합니다. 본래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원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수도원의 엄격한 규칙을 철저히 지켰지만 끝내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말씀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껏 그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직 믿음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오직 믿음으로 라는 구호 아래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교회가 구원과 은혜의 방편으로 세우는 성례와 면죄부 제도를 반대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성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 함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승천하심으로 천국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믿는 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이 내게로 전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믿습니까? 죄가 사해졌습니다. 부활을 믿습니까? 승리가 보장됐습니다. 이런 진리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열정, 사랑, 능력, 용서, 비전으로 나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분을 믿는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이 하신 모든 일들이 내가 누리게 되는 것이 축복이요, 은혜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그의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 분이 행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복을 다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