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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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16-21

우리는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시는 짧은 사건을 통해 몇 가지 사항을 배울 수 있습니다.

1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주시는 하나님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무리들이 와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예수님이 백성들이 요구를 받아들이기를 누구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만 하면 이제 자기들의 신세는 활짝 펴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백성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시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그들은 너무도 낙심한 채 배를 탓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 풍랑까지 만났으니 제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제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또 그들에게 더 나은 것을 주기 위해서 바다 위로 걸어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 임금을 잃어버림으로 세상에서 꿈꾸고 있던 그 영화를 한순간에 다 놓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영원한 임금을 만났습니다.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회복했습니다. 제자들은 작은 것을 잃었지만 훨씬 큰 것을 얻었습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것을 얻는 영적 원리를 일컬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을 잃으면 돈을 다시 손에 쥐어야 주님이 나를 도와주셨고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건강을 다시 찾았을 때에야 비로소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나를 찾아오시고 도와 주셨다고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그대로 회복해야만 주님이 도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도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또 그와 같이 해주실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갑을 잃어버리고 갑을 다시 얻기를 소원했지만, 주님은 갑을 주시지 않고 을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돈을 잃었습니까? 돈을 잃어버린 대신 건강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출셋길이 막혔습니까? 출세 대신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를 잃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하나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내게 중요한 어떤 것을 잃어버려서 괴로워하고 슬퍼하면서 주님께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으로 매달리고 기도해도 주님께서 그것을 회복시켜 주지 않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내가 주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모르는 다른 것을 주님이 주고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임하면, 우리가 잃었던 것을 철저하게 보상해 주시고 우리가 회복하지 못했던 것을 완전하게 회복해 주십니다.

역사의 시간은 주님이 오시는 그날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때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 앞에 펼쳐지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해서 주님과 영원히 사는 백성으로 그 신분과 형편이 바뀝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던 슬픔도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마음 속에 숨어 있던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감정도 설 땅을 잃어버리고 쫓겨날 것입니다. 모든 상한 감정이 완전하게 치유 받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모두 회복되고 불완전한 것들이 완전하게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나라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

고전15:19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롬8:18

그러므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예수님 없이 고요한 바다를 건너가는 것보다 차라리 예수님을 보시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2기다림을 통해서 훈련시키십니다.

풍랑이 일어나 제자들이 갖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을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한참 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시키기 하기 위함입니다.

한국의 어머니들과 유대의 어머니들을 많이 비교하는데, 유대의 어머니들이 훨씬 교육을 잘 시킨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차이점은 한 가지입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기다릴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넘어지면 곧장 일으킵니다. 아이가 공부를 하다가 답을 모르면 금방 가르쳐 주고는 이것도 모르느냐? 고 책망만 합니다. 기다려주지 못하니까 아이가 무엇인가 자기 것으로 만들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대인의 자녀교육을 보면 한 가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인내를 갖고 기다립니다. 자녀가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답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기다립니다. 기다려야 무르익을 수 있고, 기다려야 깨우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에서 SAT 시험에서 1,600점 만점을 맞은 여학생이 소개된 일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한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SAT 만점을 맞아서 화제가 된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학생의 부모님의 교육 특징은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스스로 답을 찾는 훈련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3중고를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셜리반이라는 선생님이 이 헬렌 켈러를 가르쳐서 나중에는 박사학위 2개를 얻고,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상적인 것도 역시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는 헬렌 켈러에게 ‘물’ 이라는 단어 ‘water'라는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6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6년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 기다림을 통해서 참된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급하지 않습니다. 공부도 보면 초등학교에서는 성경 특히 모세 오경 외에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저렇게 공부하다가 언제 공부하겠나? 싶은 정도로,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지도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세계 최고의 석학은 다 유대인들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총을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30:18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어느 때는 우리를 버려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하십니다.

혹시라도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순간의 훈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괴로이 노 젓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요6:19

본문의 병행구절인 마가복음6:48에는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은 역경의 밤을 헤쳐 갈 때 두려웠지만, 계속해서 노를 저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들은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계속해서 노를 저었습니다.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피로하고 지친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쓰신 종들의 특징을 보면, 그들에게 괴로이 노 젓는 과정을 반드시 통과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노를 저을 때 배가 앞으로 잘 나가면 노를 젓는 것이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앞으로 전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립니다. 그런데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새벽이 와서 이제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그물을 내립니다. 괴로이 노를 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주의 뜻대로 나아가는데, 문제가 하나도 풀리지 않습니다. 노는 젓는데, 전진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요셉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종으로 팔려가고, 순종했더니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괴로이 노를 젓는 모습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을 위하여 뛰어 보겠다고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광야로 내쫓아버리십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괴로이 노를 젓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의 단계가 괴로이 노 젓는 단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것 같지도 않고, 삶에 전진도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를 저어야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앞에 아무리 바람이 있고, 장벽이 있고, 뚜렷한 전진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있는 자리에서 노 젓기를 계속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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