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16-21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날 저녁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것을 열두 광주리나 거둔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떡을 먹은 수많은 무리들이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된 환상을 갖게 된 것입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동기가 잘못된 것임을 아시고 그들의 환호와 인기에 야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의 환호성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군중을 해산시키는 동안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은 큰 기적을 베푸실 때, 인기가 집중될 때 언제나 산에 오르셔서 조용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공격을 받는 것도 위기지만, 높이 드러나는 것도 위기입니다.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진급을 하고, 높은 자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기 때마다 군중들을 떠나서 홀로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나고 묵상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인생에는 높이 올라갈 때도 있고 깊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인기가 높을 때, 사람들이 박수를 보낼 때, 하던 일이 잘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해가 기울고 호수 위에 밤의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우기 시작할 무렵, 배를 저어 갈릴리 호수를 건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날 낮에 있었던 오병이어 기적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하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14:24바다에서는 바람이 방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뒤에서 바람이 불어 주면 노 젓는 것도 쉽고 빨리 갈 수 있지만, 맞바람을 안고 가면 노를 아무리 저어도 힘만 들고 배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힘껏 노를 저었지만 파도가 점점 거세게 일어나면서 배는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갈수록 풍랑은 거세만 가고 제자들은 더 이상 노를 저을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을만큼 지쳐 버렸습니다.
인생에서도 종종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 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삶에서 예수님이 없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역풍을 만난 것입니다. 모든 계획이 잘 진행되었는데, 어느 날 정체하기 시작합니다. 고생만 되고 전혀 진보가 없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도움을 받으면 19절 말씀을 그림처럼 자세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다보고 계셨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주 독특한 기록입니다. 산 정상에서 갈릴리 바다가 보입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고생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밤 사경(새벽 3시에 해당)에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들어 하고 어려운 고난을 당했을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지켜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거나 잊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사도행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게 됐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데반의 순교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억울함을 보고 계십니다.
19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의 반응은 ‘유령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와 너무나 닮은 모습입니다. 새벽 3시에 사람이 바닷물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설마 예수님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으로 착각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제 저녁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목격한 제자들이 몇 시간이 지나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것을 잊고 맙니다. 은혜, 기적, 축복도 잊고 오직 현실에 발목이 잡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고 가능성을 닫아 버립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지금 내가 어려움을 겪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이해되지 않는 일을 겪는다고 해서 주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유령이 아니십니다. 새벽 3시에도 물위를 걸어 나를 도우러 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출애굽기 16장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통과했을 때 얼마나 감격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감격과 눈물에 속지 마십시오. 사람은 자기 믿음에 도취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을 것어 떨어졌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돌변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와 굶어죽게 하느냐며 심하게 불평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 군대를 전멸시키는 기적을 목격하고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들을 기억하십시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신7:17-19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 기적을 베풀지 않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중히 여기시면 새벽 3시에 물위를 걸어서라도 찾아오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요, 주님이십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20-21주님은 유령인줄 알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니 풍랑이 그치고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습니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풍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하는지 아닌지에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한 번도 풍랑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풍랑은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를 찾아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에는 풍랑이 두려움과 절망의 심연으로 우리를 빠뜨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할 때에는 풍랑이 우리를 목적지에 빨리 이르게 도와주는 강한 바람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찬373장 (통503장)
1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 합니다
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3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4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주소서 아멘
풍랑은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함께하면 풍랑조차도 우리의 인생을 돕는 아름다운 선으로 바뀔 것입니다.
에델 워터스라는 미국의 유명한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폭풍우를 지날 때라는 곡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녀의 삶은 그 노래와 똑같았습니다. 가난한 십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워터스는 자신의 고백처럼 ‘아이였던 적이 없었고, 사랑 받지도 못했고, 이해해 줄 가족도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3살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청소부로, 나이트 클럽 가수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 곳에서도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가수와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녀가 여전히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청중의 환호와 갈채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깊은 곳의 공허감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와 명예도 그녀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졌죠. 폭풍우를 지나고 있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외톨이였죠. 항상 비가 오고 있죠.”라는 노랫말은 그녀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전도자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이 우연한 만남이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폭풍우 대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 그녀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 만족과 행복을 찾은 그녀는 빌리 그래함 전도단과 함께 동역하며 간증과 찬양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80세 생일이 되었을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폭풍우를 지날 때는 내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곡입니다. 그 노래를 부를 때 내 인생을 그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설사 앞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심장마비에 걸린다 할지라도 폭풍우를 지날 때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나의 예수님을 부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