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6:5-9
저는 이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무리들의 배고픔을 아시고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무리들이 배고프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예수님은 그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예수님은 사람들의 배고픔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2빌립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요6:6요5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무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배고픈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는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내색도 하시지 않고 도리어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빌립에게 질문하신 것은 빌립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빌립의 믿음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빌립은 제일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을 직접 목격했고, 예수님의 능력 있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예수님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는지를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빌립에게 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의 신앙 정도를 시험해 보실 때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사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성과 상식, 세상 지식을 따라 사는지 확인해 보실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험은 마귀의 시험과 목적이 전혀 다릅니다. 마귀의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버리고 죄짓게 하여 멸망케 하는데 목적이 있으나,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굳게 다지고 성장시키는 신앙 훈련이며 연단입니다.
주님께서는 시험을 잘 이기고 연단된 사람에게는 소망을 이루는 복을 주십니다.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4-5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닥쳤을 때 무조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를 먼저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것이 마귀에게서 온 시험이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겠지만, 만일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연단이라면 그러한 기회를 주신 주님께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2-4"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6:7빌립은 참으로 똑똑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재빨리 계산하여 결과를 주님께 보고했습니다. 그가 계산해 볼 때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여 허기를 겨우 면하게 하려고 해도 200 데나리온이 있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데나리온은 그리스가 2002년에 유로화를 쓰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화폐 단위로서 예수님 당시에 노당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므로 200 데나리온은 상당히 큰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은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 설사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는데 어디서 그 많은 떡을 살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곳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가 아닌가? 그러니 떡을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나 차라리 사람들이 각자 마을에 들어가서 음식을 사 먹게 하는 것이 낫겠군.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빌립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생각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믿음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고백 위에 역사하십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주님만을 믿고 의지할 때,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는 빌립과 같이 계산에 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계산은 항상 ‘안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들을 하기 보다는 계산함으로 말미암아 아무 것도 못하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안드레는 어떻습니까? 안드레는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6:8-9여기서 몇 가지 사실을 살필 수 있습니다.
첫째, 안드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안드레는 ‘어떤 아이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가난, 부정부패 등 모든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해결할 능력이나 지혜, 방법이 없습니다.
안드레의 방법을 보십시오. 예수님께 있는 그대로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안드레도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기서 빌립식 믿음과 안드레식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성의 신앙과 믿음의 신앙입니다. 두 가지 신앙에서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빌립은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답을 했지만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안드레는 이성적인 대답이 아니었지만, 주님이 원하시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최선의 것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 환경,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게 주님의 뜻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최선의 것’을 사용하셔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빌립과 안드레는 어떤 차이를 보입니까? 빌립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의 믿음을 가졌고, 안드레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안 되는 일이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의도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시려는 예수님의 의도를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허기진 무리를 먹일 것을 결정하셨고, 안드레는 그 의도를 읽었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내놓은 최선의 것을 매개체로 해서 기적을 만드신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의도와 말씀이 있어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의도한다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을 믿으니까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십시오’라고 말한다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심할 게 있습니다. 무조건 ‘믿습니다’하며 금식한다고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주님의 결정에 우리가 믿음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주님의 의도는 묻지도 않고 ‘주님, 이 사람을 살리실 줄 믿습니다’라고 한다고 살아나지 않습니다. 안수하고 금식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생각, 희망, 기대일 뿐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희망과 기대를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결정에 대한 나의 응답일 뿐입니다. 주님의 의도, 마음을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케이티 데이비스 라는 미국 소녀는 자원 봉사 차 방문했던 우간다에서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고 그들을 돌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간다로 건너가 우간다어로 ‘그리스도의 진리’라는 의미를 가진 ‘아마지마’라는 비영리 사역 단체를 세워 수백 명의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우간다 어린이들을 위해 1년에 1인당 300달러씩 후원을 받습니다.
이 단체의 운영 초기인 2,008년 10월경 커다란 재정적 위기를 겪게 되어 150명의 아이들 중에 44명만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 그녀는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딸아, 이 사업은 나의 뜻이며, 불가능이 없는 내가 벌인 일이란다. 무엇이든 내 이름으로 구하면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때서야 자신이 믿음이 없음을 회개하고 150명의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가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후원자가 한 명씩 늘어나더니 여러 곳을 통해 후원금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그 녀가 필요로 했던 7만 달러가 모두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처음에는 40명의 아이들을 지원해 학교에 보내던 것이 현재는 4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계산하지 않은 믿음으로 이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기도하고 믿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리가 믿었습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못하실 만큼 큰 요청도 없고, 거들떠보지 않으실 만큼 작은 요청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