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5:39-42

이제까지 살펴본 예수님이 메시아요 구원자이신 객관적인 증거는 3가지입니다.

1세례 요한의 증거

2예수님이 행하신 일

3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심

여기에 한 가지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모든 성경이 증거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곧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을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아무리 구약 성경을 눈을 비비고 보아도 예수님 이야기가 없던데요. 그것은 성경을 볼 줄 몰라서입니다.

헬렌 켈러는 만일 자기가 며칠 만이라고 눈을 뜬다면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해야 마음 속 깊은 것까지 읽을 수 있는데 소리만 들으니까 답답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숲에 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친구 한 사람이 숲을 산책하고 왔을 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별로 본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헬렌 켈러는 놀라움을 나타내었습니다. 숲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데, 한 두 시간 동안이나 산책을 하고서도 본 것이 없다니 놀랍다는 것이지요.

눈을 가지고 있고, 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명히 숲 속에는 많은 것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단지 그의 마음이 복잡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것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외치는 음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이 누구입니까? 예수

이 땅에서 남자 없이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령으로 잉태하신 여자의 후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18-23

노아 때 사람들의 죄가 이 땅에 관영하자, 하나님은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노아의 방주에 탄 사람입니다. 이 방주가 누구입니까? 예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으로 고역을 하느라 너무 고통이 심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왕은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갖가지 재앙으로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은 마음을 강팍하게 먹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재앙, 장자의 재앙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장자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을 길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면 되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불평을 하자, 불 뱀이 그들을 물어 뱀의 독으로 인하여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놋 뱀을 보는 자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놋 뱀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28

구약을 읽으면 계속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성막도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히1:1

이렇게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그 이유에 대해 여섯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5:40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 첫째 이유는 예수님께 오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밥상에 앉아야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구경만 하면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그분을 알게 되는데, 자꾸 그것을 거부합니다.

둘째 이유가 41-42절 말씀입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요5:41-42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영광 받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기를 원하시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표적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고 따름에 따라 예수님의 인기와 칭송이 점점 커져 가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주시하던 중에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례를 어겼다고 하여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핍박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만 치중하여, 정말 중요한 율법에 담겨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간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지극히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종교만 가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7:6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고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했지만, 그것은 다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 상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 또한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서도 자기 뜻만을 고집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그 말씀을 가지고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열중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겠다고 하면서, 그로 인해 불이익이나 불편이 따르게 되면 하나님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자기 편리한 대로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자기를 포기하는 자기희생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으며, 어떠한 불편함과 손해를 보더라도 변함없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더 주고 싶어하고,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기복이 심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 같은데, 어떤 때에는 냉랭한 마음이 되어 형식적으로 주님을 대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4-5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