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3-25

이는 - 요한복음 5:21, 22의 결론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1-22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와,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5:23

지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구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까? 인간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대신에 인간의 위대함이 나타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중심이 되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나는 자유해

예수님은 상실한 아버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예수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며, 모든 것을 예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예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이름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은 아무리 하나님은 위하여 한다고 해도 거짓말입니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들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성품을 가지고 깨끗하게 살아야 할 이유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존귀케 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하여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믿고 걸어가십시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위하여 살아갈 때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사 심판하는 권세를 다 예수님에게 주셨는데, 예수님은 무엇을 기준으로 심판하십니까?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의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의 반응을 보인자들은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심판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심판이라고 하면 흔히들 세상 마지막 날, 천사의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있을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살 자와 죽을 자가 지금부터 이미 갈라지고 있습니다. 살 자는 벌써 생명을 얻고 있습니다. 죽을 자는 지금부터 사망을 가슴에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진행 중에 있는 심판입니다. 이것을 24절에서 명료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영생을 얻었고 - 영생은 앞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우리가 이미 체험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절 말씀은 영적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여기서 죽은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이 그들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으나 영혼은 육신 속에 죽은 채로 있다가 육신마저 죽으면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란,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아 놓고서 죽음의 생활을 하다가 처형장을 향해 나아가는 사형수의 절망적인 발걸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영원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에게 죄를 용서 받고 형벌을 면제받는 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듣고 믿는 자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혼이 살아나서 영원한 사망의 자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마지막 날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예수 믿자 말자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중생의 축복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중생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를 거부하면 그는 이미 영원한 사망을 선고 받는 자가됩니다. 죽음의 심판 역시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그러므로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베풀 그 심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이미 세상에서 진행된 심판을 마무리 하는 작업입니다. 다만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육신이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인류에서 있어서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에 관한 문제는 오늘이 내일을 좌우하는 양태로 나타납니다. 오늘 예수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내일의 운명이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정확합니다. 거기에는 억울하다는 말을 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의 재판은 가끔 오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는 판결에는 오판이라는 것이 절대 없습니다.

사람들은 영생과 멸망에 대해서 설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멸망한다, 영생한다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면 사람들이 다 걸걸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웃에서 전도할 때 믿을 걸, 친구가 예수 믿으라고 할 때 믿을 걸, 하며 후회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빗대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심각한 경고가 들어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만 하면 죽음은 물러가고 지금 당장 영원한 영생을 받습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자기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지 못합니다. 천사가 지시하는 대로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가야 합니다.

빅터 플랭클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신과 의사로서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몇 날 며칠을 열차 속에서 짐짝 취급을 받으면서 실려 가고 있었습니다. 도착을 해서 내리자 독일군 장교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씩 내릴 때마다 손가락으로 오른쪽 왼쪽을 가리켰습니다. 그 손가락 방향에 따라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른쪽으로 간 사람들은 당일 가스실에서 다 죽었고, 왼쪽으로 간 사람은 살아남은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10%만이 밝은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장교의 손가락의 향방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 것입니다.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쪽 혹은 저쪽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단순한 동작에 의해 개개인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그것은 정말 불공평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낮선 사람의 손가락에 의해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숨 막히는 순간입니까?

마지막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때에 비슷한 순간이 우리 눈 앞에 벌어집니다. 물론 심판석에 앉으신 그 분은 낯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오른쪽 왼쪽을 가리키는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한 운명대로 가리킬 뿐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으면 오른쪽으로, 믿지 않았으면 왼쪽으로 가라고 지시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놓고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믿어도 내가 믿은 것이고, 안 믿어도 내가 믿지 않은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것도 내가 믿어 얻은 것이요, 영생을 거부한 것도 내가 안 믿어 거부한 것입니다.

나가서 믿지 않는 이웃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자마다 살아난다고 말씀하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습니다. 귀를 막지 않는 이상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우리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