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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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0-22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 이 말씀에서 투명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에게 숨기는 게 없이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십니다.

투명성은 곧 믿음을 주게 됩니다. 일치와 투명성은 축복을 줍니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를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하였는데 더 큰일은 무엇입니까?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5:21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죽은 자들을 살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죽은 자들은 살리는 권세를 주셨으므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생명과 치유,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질병과 고통에서 치유와 기쁨으로, 낙심과 절망에서 믿음과 소망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반면에 마귀가 역사하는 곳에는 공포와 불안, 죄 만이 넘쳐 납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어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매우 독특한 모습이 있습니다. 아들이 등장하면 아버지는 역할을 끝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아들이 등장해도 아버지가 계속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후계자가 전승되지 않는 게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물러나야 하는데, 계속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부활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4:17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브라함이 백세 때 의학적, 물리적으로 더 이상 임신할 능력이 없는 사라에게 아이를 잉태하게 합니다. 그것은 부활의 능력 때문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4:19-20

부활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이 사라에게 아기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요, 부활이요, 부활 안에 있는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11:17-19

아브라함은 이삭으로 인해 불가능에서 생명을 얻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내놓으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부활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어떤 절망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부활하니까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서 아들에게 칼을 댈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아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부활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하나님은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부터 하나님은 모든 부활의 권위와 능력을 예수님께 이양하셨습니다.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겁니다.

신뢰 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뒤에서 조종하기 때문입니다. 맡긴 후 원격 조종합니다. 대리인을 내세워 조종하기도 합니다. 그런 방법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활의 능력을 모두 예수님께 이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부터 부활의 능력을 이양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은 부활과 기적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고 예수님 안에 들어간 자는 예수님의 부활과 기적의 능력을 동일하게 체험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진정한 관계는 ‘일치와 투명성’, ‘부활 능력의 이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예수님께 부활의 능력과 동시에 ‘심판의 권리’도 이양하셨습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는 권세를 다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죄악, 불의한 자들, 불순종의 사람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등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할 때 하나님이 징계하셔서 죽이기도 하고 포로로 잡혀가게도 하셨습니다. 전염병으로 죽이기도 하고 이방인의 칼에 죽게 하며 온 나라를 뒤집어 놓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까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하루 아침에 손바닥 뒤집어지듯 날려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부터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죽으심으로 두 가지 지위를 얻으셨습니다. 하나는 그를 믿는 모든 자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를 믿지 않는 온 세상의 심판주가 되셨습니다.

아들을 믿고 구원받는 길을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내 힘, 내 능력, 수양, 종교, 도덕으로 구원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을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죄가 교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아멘으로 받아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과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영원한 천국에 올라가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신약에서 예수님의 심판 기준은 하나님과 다르게 나타납니다. 누구든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제 하나님의 모든 심판 기능이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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