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5:5-9
"거기 서른 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5:5-6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예 낫기를 원합니다. 고쳐주소서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즉시 치료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병자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인간적인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자기를 버리지 않는 대답을 합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5:7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베데스다에 들어가는 방법을 통해서 구원을 받기 원하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으니 들어가게 좀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삶의 조력자로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정도로 자기의 의를 버릴 줄 모릅니다. 자기 고집을 버릴 줄 모릅니다. 38년이나 시도를 했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기 방법대로 하겠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떤 사람들이 제일 다루기 힘든 줄 아십니까? 예수님을 이렇게 조력자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꿈과 자기의 야망과 자기의 방법을 그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요청합니다.
“내 힘 가지고는 조금 부족하니까 주님이 좀 도와주세요. 여기에 장애가 있으니까 이 장애만 제거하면 내 방법대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멋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의 모든 연약한 삶을 내어놓고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나를 처리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습니까? 모두 자신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일찍이 항복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나이 오십 육십이 넘도록 자기 고집을 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꿈을 붙들고 우리 주를 위해서만 헌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이렇게 당연한 질문을 하시는가? 그럼 38년 동안 고생한 사람이 낫길 원하지 계속 아프기를 원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긴 병을 앓게 되면 희망을 버리게 됩니다. 베데스다 곁에 습관적으로 앉아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은 점점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진짜 낫기를 원하느냐?” 그의 마음 가운데 있는 소망을 일으켜 주십니다.
실질적으로 많은 성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성도가 왜 성공하지 못하는지 왜 승리하지 못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승리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하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좌절감이라든지 노예의식, 실패의식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여전히 노예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1세대가 다 죽을 때까지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노예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종이었을 때가 훨씬 나았다’
왜 그랬습니까? 종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치유 받아야 될 것은 우리 마음의 회복입니다. 심령의 회복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해주시면 해결되지 못할 문제가 없다.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의 토양이 되어야 합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럴 때마다 “아멘, 내가 낫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은혜 주시면 됩니다”라는 믿음으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단 10%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90%는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신춘문예에 계속 작품을 내어서 10년 만에 당선되었는데, 그 다음날에 자살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드디어 장원 급제했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이러한 작품을 계속써서 작가로서의 명예를 지켜나갈 힘이 없노라”
그리고는 죽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해가 안되지요. 그런데 왜 이같은 일이 벌어집니까? 10%의 사실은 있었지만 90%의 반응에 있어서는 계속 안되는 것, 문제가 되는 것, 쓰러지는 것만 생각하다 보니까 그 사람 전체를 지배하는 성향이 부정적인 것으로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형들의 손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이 노예로 팔려갔다는 사실은 100%의 실패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한 실패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요셉은 반응에 있어서 90%의 긍정적인 반응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느 순간에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총리가 됩니다. 흉년이 되어 자신을 팔았던 형들이 찾아옵니다.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철천지 원수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복수심에 불타서 보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요셉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45:5원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반응을 보였습니다. 얼마나 긍정적인 반응입니까? 결국 요셉의 태도, 곧 자기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두 발산시킬 수 있는 자세 때문에 많은 열매를 거두며, 자기 가족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 반응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10%의 사실을 90%의 반응을 통해서 뒤집어엎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자체에 메어있지 말고 반응으로 사실을 바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5:8-9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명쾌합니다. 38년 된 병자를 설득하지도,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셨습니다. 얼마나 확신이 있고 능력에 찬 말씀입니까?
위엄이 있고 능력이 넘치는 예수님의 명령에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바로 자리를 들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지난 38년간 동안 고질적으로 그에게 고통을 주었던 불치병이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의 자리, 고통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 누워있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명남 선교사님은 중국 연변과 동남아 지역의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선교사님 역시 한센병을 앓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뛰다가 넘어졌는데, 그 상처가 감염되어 한센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선교사님은 마을에서 쫓겨나 산골 움막에서 지내다가 소록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0대 소년에게 그곳은 더 큰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 손이 뭉개진 수천 명의 사람들을 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장로님의 인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님은 새벽마다 주님께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무슨 죄 때문에 내가 한센병에 걸렸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 좀 낫게 해 주세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절규에 가까운 선교사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소록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간호사의 정성스러운 치료와 돌봄을 받자 선교사님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빠진 머리카락이 나고, 막혔던 코가 뚫리고, 잘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선교사님은 정상인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해 8년 만에 소록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소록도를 떠난 선교사님은 자신이 한센인이었다는 것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에 눅17장에 나오는 치유받은 열 명의 나병 환가 가운데 한 명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했다는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는데, 감사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한센병 환자였다는 사실을 숨기며 살다니’라는 생각에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후 선교사님을 자신이 한 때 한센인이었음을 밝히고 자신의 체험을 수기로 써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월급을 쪼개어 옷과 의약품을 사서 한센인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한센인들을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해 2000년에 한센인 전문 사역자로 헌신하고 2002년에는 한센국제 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연변 조선족 자치구, 중국 광동성, 인도 뱅갈로, 필리핀 딸라 등지에 있는 한센인 마을을 찾아가 한센병 환자들을 도왔습니다. 가족들마저도 등을 돌린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선교사님의 모습을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슈바이처가 운영하는 아프리카의 랑바레네 병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미모의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리안 프레밍거, 헝가리 귀족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모든 악기의 연주에 능했으며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배우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던 그녀는 어느 날, 슈바이처의 병원 운영 자금 조달을 위한 오르간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크게 감동을 받고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허상일 뿐이었다. 남을 위한 삶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
이에 프레밍거는 그 자리에서 아프리카 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슈바이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흑인 병자를 위해 사랑을 베풀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프레밍거가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을 위한 삶이 이렇게 행복한 것을.’
자기를 위해서 살았을 때는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뛰어난 미모와 화려한 연기로 그렇게 박수갈채를 받았어도…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검은 대륙 검은 피부의 환자들을 위해서 산 20년이 정말 행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2021년 11월 19일 오전 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