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요4:50-54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4:50표적을 직접 볼 것을 기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시험과도 같습니다. 놀랍게도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은 그의 간절한 마음과 수고에 비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단순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믿음이 기적을 가져옵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17:12-14"(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에게)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9:7우리나라 교회 역사 가운데 신유의 기적이 많이 나타난 분으로 김익두 목사님을 꼽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1950년 6. 25 전쟁 당시 공산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교할 때까지 39년의 사역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아래턱 기형으로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통해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의 집회에는 일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일제 치하였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목사님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았는지, 목사님이 소속되어 있던 교단의 목사님들이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사실 관계를 조사해 ‘조선 예수교 이적 증명’이란 책을 펴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김익두 목사님은 무엇보다도 성경 읽기를 강조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구약 성경은 백 번, 신약 성경은 천 번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을 읽으면서 울지 않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대화를 할 때에도 항상 성경을 펴 놓고 인간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사십시오”라고 강조하였으며,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 안 가 본 곳 없이 다 찾아가 별별 기사와 이적을 행하여 복음을 전했지만, 결국에는 성경이 제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금식도 많이 해보고 이적도 많이 체험해 보고 부흥집회도 많이 해 보았으나, 성경을 읽어서 얻은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없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고 그 가운데서 은혜를 받고 성장해 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신앙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담임하던 신천 서부 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성경 읽으셨어요? 성경 몇 번 읽으셨어요?”라는 인사 습관을 갖게 할 정도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김익두 목사님을 통해 나타난 신유의 역사는 말씀을 사모하는 열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나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기적이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요4:51-53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던 왕의 신하는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을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떠날 때도 해도 다 죽어가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그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 “혹시?”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에게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를 물었더니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연하게 열기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부터 열기가 떨어진 것을 알고 그와 온 집에 다 믿게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인 것입니다. 왕의 신하 지체 높은 아버지가 자신의 체면을 버리고, 위신을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메어 달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이 있기 때문에,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곤경에 빠지면 사람들은 단순해지고 겸손해집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다윗은 시편에 시를 많이 남겼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다윗의 주옥같은 시들 가운데 왕궁에서 지은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이 광야에서 지은 시들입니다.
광야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궁에 들어왔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범죄에 빠지게 되었고, 암투가 있었고, 음모가 있어 다윗의 마음 가운데 고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깨닫고 믿음의 전진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평탄이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막을 때는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담대하게 고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올 때는 동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답답해서 나오고, 어떤 사람은 교양삼아 나오고, 어떤 사람은 친구를 만나려고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상 나오고, 어떤 사람은 점쟁이가 교회에 나가라고 해서 온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인간이 되어서 돌아왔습니까? 아닙니다. 배가 고파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귀중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깨달아서 돌아왔다고 착각합니다. 아닙니다. 탕자는 배가 고파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탕자는 조금 배고플 때는 쥐엄 열매를 찾았다. 그러나 진짜 배고플 때는 아버지를 찾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아주 배고프게 만드시는지 아십니까? 아버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조금 배가 고프면 세상의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찾는 불쌍한 인간입니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배곯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버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있는 고난과 어려움을 아버지를 찾는 기회로 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성장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배우는 또 한 가지 교훈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 방법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합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4:47에무슨 말입니까? 빨리 내 아들에게 오셔서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빨리 오셔서 안수해 주시면 낳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방식대로 고쳐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친히 가지 아니하시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실망스런 표정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요? 누가 그런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 눈앞에서 나은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가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누가 압니까?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거야 가봐야 아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가 낫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하인들을 만났고, 하인들로부터 아이가 살았으며 열이 떨어진 때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말씀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가족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치 나아만처럼 자기주장, 자기 방법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왕하5:11-12나아만이 언제 고침을 받았습니까? 자기주장, 자기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을 때였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5:14우리는 내 방법을 너무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내용에 대해 순종할 줄을 모릅니다. 이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군인들에게는 명령 밖에 없습니다. 전방으로 가라고 하면 전방으로 가고, 후방으로 가라고 하면, 후방으로 가고, 책상에 앉아서 사무를 보라고 하면 사무를 보는 것이 군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내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나아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장애가 되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방법을 포기하는 것이 바로 믿음 성장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의 고집을 버릴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번째 표적이니라"
요4:54이것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원격에서 치료하신 사건을 가리킵니다. 본문은 이 표적이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표적에 이어,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표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표적은 두 번째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6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기적의 역사를 베풀고 게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히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