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요4:43-45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4:43-44이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역을 마치고 갈릴리로 가십니다. 44절을 보니까 예수님이 사마리아 전도를 마치고 갈릴리 고향 마을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하느니라
이 말은 구약 성경에도 여러 번 나온 말씀입니다. 그럼 도대체 선지자가 왜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고향 사람들은 선지자의 어린 시절부터 그를 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 것입니까? 누구의 아들이요, 직업이 무엇이요, 나이는 얼마요, 키는 얼마고, 어느 학교를 다녔고, 주변에 친척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은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중요한 지식이 아니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지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예수께 나아가는 데 장벽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지식이 장성한 지식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 사람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태신앙임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직분자의 자녀였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교회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성경 퀴즈 대회에 나가서 일등했다. 나는 왕년에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스탈린과 같은 사람도 신약성경을 다 암송했던 사람이었고, 오랫동안 유고슬라비아의 국가 원수로 지냈던 티토는 교회에서 시중들던 신학생이었습니다.
이렇듯이 어렴풋한 지식들은 우리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이런 희미한 경험들, 잘못된 지식들, 어렴풋한 지식들, 이런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된다면 부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명령하실 때 “아멘”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믿음이지,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지식과 경험들이 ‘믿음’인 줄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유념하시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러한 피상적인 지식들을 뚫고 그리스도의 풍성한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요4:45예수님이 갈릴리에 가셨을 때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했습니다. 아마 선입관이 없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장하신 30년 동안의 생활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선입관은 좋은 면도 있는 반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한 사람의 미래를 막기도 하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잘 알아!’ 그 사람의 과거만 생각하고 미리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크지 못합니다.
현재를 보지 못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게 문제입니다. 자신이 판단해서 “나, 그거 못해!”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실패로 인해 어떤 일을 할 것을 요청하면 못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새로운 것으로 가득하며 항상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변화할 미래를 보고 만남을 가진다면 굉장히 신선해 집니다. 비록 그 사람이 수가성의 여인처럼 살았다 해도 예수님을 만난 후로 위대한 전도자로 탈바꿈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서로 미래를 보고 만나고 축복해 준다면 그 만남은 훨씬 새로워지고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선입감을 버리십시오. 기존 생각, 과거의 경험, 상처를 무시하십시오. 믿어 주고 격려해 주면 사람은 꽃이 피는 법입니다.
이것을 넓게 생각해 보면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동남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선진국들도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 25 전쟁을 거치면서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지만 반세기 만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 받기만 하던 나라에서 베풀 수 있게 된 유일한 나라, 자연 재해나 인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단 시간에 극복하기로 유명한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국민 모두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고, 나라를 일으키고자 하는 일념으로 불철주야 뛴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들 중에는 부족하고 잘못된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일에 인색합니다. 리더들을 깎아내리고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성숙하려면 리더의 권위를 인정해 주고, 서로를 세워주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존경했던 까닭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활동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요4:45갈릴리 사람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갔다가 명절 중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인 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영접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표적과 이적을 행하는 자에게 갖는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시는 여부에 따라, 이들의 태도는 호의적인 데에서 적대적인 것으로 돌변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자신의 진정한 구주로 믿고 섬깁니까? 표적은 주님께서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계시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능력과 도움이 먼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본질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우선시하는 신앙은 자칫 그릇된 길로 가기 쉽습니다.
천부교라는 이단의 교주로 자신을 ‘새 하나님’이라고 칭하던 박태선도 처음에는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유의 기적이 그를 통해 나타나고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자 그만 신앙이 변질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이단의 교주가 되어 성경의 98%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미혹하다가 1990년에 죽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기적이 취하면 신앙의 정도를 벗어나 잘못되고 맙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눈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가면 신앙이 변질됩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에 집중하고 예수님께 믿음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남자만 오천명에 이르고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합하면 수만명이나 되었겠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러 골고다로 가실 때 따랐던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좇아 사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