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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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4:39-42

"여자의 말이 그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요4:39

여자가 자신의 불륜으로 가득한 과거를 고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죽었으면 죽었지 숨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했습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어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되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서슴치 않고 자신의 수치스럽고 약한 부분들을 말하게 하는가?” 그것은 이미 치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 정리되지 않은 갈등은 말하지 못합니다.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치료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그 큰 갈등이 다 치료되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 긷는 것을 언제까지 이렇게 도둑처럼 숨어서 할 것인지, 이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아무도 그를 괴롭게 할 자가 없습니다.

자기의 가장 큰 원수는 우리 안에 있는 양심입니다. 그러나 이것에서 화해가 이루어지면 아무도 나를 괴롭힐 자가 없습니다. 자살하는 이유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와 화해하면 아무도 괴롭힐 자가 없습니다.

이 놀라운 화평이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 나의 모든 죄를 자백하고 인정하는 데서 옵니다. 그리고 자기는 죽었다는 것을 선언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녀는 당장 동네로 뛰어 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선지자,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가 바로 우리 동네에 오셨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비웃으며 별로 관심도 두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내게 말씀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여자의 솔직한 고백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바로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우물곁에 계신 한 유대인을 만나러 가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왜 우리처럼 허물 많은 자들을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삼으셨을까요? 왜 천사들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지 않았을까요? 만약 천사들이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소리로 그칠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거기에는 살아있는 적용이 없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체적인 죄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천사같이 아름다운 소리, 감동을 주는 멋있는 교훈, 그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사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지, 나 같은 놈은 달라”하면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저는 설교를 하기 전에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나같이 죄 많고 허물 많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왜 나 같은 부족한 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셨을까?’ 하면서 한없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이 여자 같은 죄인일 때 그 말씀에는 살아있는 적용이 있습니다. 같은 죄인에게 적용되는 살아 있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 한 유대인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이들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인 이 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 가면서 예수님을 증거했을 때, 그 증거는 살아있는 증거, 공감이 되고, 피부에 닿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증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천사들에게 필요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죄인들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죄인이 본 그리스도, 죄인이 만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상처와 아픔, 좌절과 절망, 죄와 상처 ... 이 모든 것이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처를 받았습니까? 예수 안에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찾아가 나의 상처를 치료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십시오.

여러분이 말 못할 죄로 괴로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예수 앞에 나와 모든 죄를 다 고하시고 용서의 은혜를 맛보십시오. 그리고 죄로 고통 당하는 이웃을 찾아가 나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와 수치를 드러내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영혼의 추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인의 솔직하고 담대한 증거를 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요4:40

사마리아인들은 주님이 자기들에게 찾아오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은 바쁘니까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나서 확인해야지 하며 기회를 미루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의 말을 듣자마자 그 여자가 말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와서 자기들의 집에 유하시면서 더 말씀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많았습니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요4:41

이제는 이들이 여자에게 무슨 말을 했습니까?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4:42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은 여자의 간증이 너무나 은혜스러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여자의 경험이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눈물 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확인하였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그들이 확인하였던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메시아는 오직 유대인의 메시야이지, 온 세상의 메시야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만약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었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요? 그들은 영원히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없애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유대인들의 예수님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선입견들이나 오해가 있어서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똑같은 설교를 듣는다고 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진리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직 진리의 작은 한 부분만 들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잔치의 초청장을 받고서도 어떤 사람은 결혼하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새로 산 소를 부리러, 또 다른 사람은 새로 산 밭을 보러 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초청이 중요한 줄 알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억지로 주시지 않습니다. 주셨는데도 다른 일을 핑계대면서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맙니다.

말씀을 듣는데 사마리아인들이 보인 열성을 보십시오. 주님을 자기 마을로 영접해서 말씀을 더 듣기를 원하는 자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진심으로 예수님을 자신들의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보십시오.

여러분, 다른 사람의 값싼 간증에 기초하여 진리를 믿지 않도록 하십시오. 저 사람이 뭐라고 하니까 나도 믿는다는 식으로 믿지 마십시오. 직접 확인하십시오. 똑 같이 말씀을 들어도 구원받는 자가 있고, 거부하고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자에게는 은혜를 가두어 가십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만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감사하지 않고 투덜거리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가 가끔 교회에서 중책을 맡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보십시오.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 아이 같이 겸손한 자에게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합니다.

여러분, 지금 잘난 맛으로 살고 계십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자는 하나님께서 들어 엎어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납작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실 때 낮아지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는 길입니다. 나에게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기뻐하십시오.

내가 원래 교만한 자였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집어 던지셔서 인생의 맨 밑바닥이 되었다면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많은 봉사를 하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자기의 종교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겸손한 자를 만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요, 진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 예수를 누구라고 했습니까? 유대인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선지자입니다.

맨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합니까? 메시아로 알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예수님에 대해 더욱더 깊은 고백이 나오는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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