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4:25-30
지금 우리 앞에는 미친 듯이 보이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물을 길러 우물가로 왔다가 물동이마저 두고 동네로 달려갔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흥분해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횡제를 한 것도 아닙니다. 그의 손에 돈뭉치가 들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신분이 갑자기 높아진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29절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4:29여인은 지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다 알고 계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신을 그토록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9절의 ‘그리스도가 아니냐?’는 말은 ‘우리가 찾던 메시아가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하는 뜻입니다.
여인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면 메시아를 만난 기쁨이 너무도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부끄러움을 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자신이 메시아를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가급적이면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숨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기쁨이나 평안 혹은 행복이라는 단어들은 사치스러운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여인은 정서적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성격은 뒤틀려 있었고 자기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첩으로 살면서 동거하는 남자가 주는 쥐꼬리만한 용돈에 목숨을 걸고 살던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이 갑자기 수치심을 잊어버리고 기쁨에 들떠 동네로 달려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야기하는 이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여인의 이러한 언행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중에는 메시아를 만나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여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권에 당첨되어서 펄펄뛰는 사람은 이해해도 예수 만난 기쁨 때문에 펄펄 뛰는 사람은 도무지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복음서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는 가를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을 보면서 구원받은 사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여인이 구원받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이 여인이 구원받고 거듭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본문을 다 이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의 메시지는 여인이 구원받았다는 것에만 집중되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더 큰 도전은 예수를 믿으면 심령의 병도 고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병이요, 하나는 마음의 병입니다. 마음의 병에는 현대 심리학이 말하는 여러 가지 정서적인 장애는 물론 생각이 잘못되고 가치관이 뒤집혀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동시에 거듭난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 지는 복까지 받습니다. 물론 마음의 병도 치유 받습니다. 마음이 건강해지면 다른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정서적인 혼란에서 해방이 되고, 억눌렸던 감정에서 자유롭게 되며, 비뚫어진 성격이 교정을 받습니다. 마음이 건강해지면 지금까지 상처받은 내면의 세계가 아물기 시작하며 왜곡되었던 대인 관계가 바로 펴집니다. 우리의 심령에 생수되신 예수님이 계시면 이런 치유와 변화가 뒤따라 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만난 수가성 여인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너무나 감격해서 동네로 뛰어 들어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소리치는 여인의 모습에서 그 여인은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 여인의 삶이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요?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처럼 하루 반짝 행복해 하다가 다시 옛날로 돌아갔을까요? 아니면 부끄러운 첩 생활을 계속 하면서 사람들을 피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사는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갔을까요?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해 보아도 이 여인이 그 옛날 생활로 돌아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죄지은 사람처럼 가만히 물 길러 오는 그런 여자로 되돌아갔다면 우물가에서 메시아를 만난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마음의 병은 그대로 안고 집에 틀어박혀서 병자처럼 지내고 있다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될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도 병든 정서, 잘못된 성격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면서도 세상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한 번 잘못한 사람은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입었던 상처가 집사나 권사가 되어서도 여전히 쓴 뿌리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언젠가 서울의 한 정신병동에 입원하고 있는 사람 중의 70%가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듭난 것 같은데, 예수는 믿는 것 같은데, 마음의 병은 더 심해져서 건강의 균형이 깨어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심령이 고침 받는다. 사람이 변한다. 행동이 달라진다는 내용을 수반하는 전인적인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지 죽으면 천국 들어간다는 의미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거듭났다고 하면 그저 천국이 보장된 것으로 생각하고 내 마음에 병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들 모두에게 너무도 고통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가성 여인을 다루시는 주님의 말씀에서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만나자 마자 생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고, 여자가 생수 얻기를 간구하자 예수님은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그 여인을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여인이 죽어도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 문제를 건드리십니다. 아마도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 말씀은 그 여인에게 죽기보다 듣기 실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여인이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하자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인은 자신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몸 둘바를 몰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지각하는 것은 마음 밭 한 가운데에 있는 큰 바위를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바위를 움직여야 밑에서 샘물이 솟을 수 있습니다. 바위가 누르고 있는 이상 샘물은 솟아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여인의 죄 문제를 거론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 문제를 다루신 다음에 예수님은 여인이 평소에 마음에 두고 갈등하는 종교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이 여인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자기들의 종교의 정통성 문제 때문에 수백년 동안 반목하여 왔다는 사실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이 여인은 누구의 말이 옳은지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다루시면서 그 마음에 있는 종교적인 갈등 문제를 풀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갈등과 문제가 풀리지 않는 심령에는 생수가 솟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심과 갈등으로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데 그 마음이 치유함을 받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 문제로 고민하는 여인에게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문제로 고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4:21이어서 인류를 구원하신 메시아가 유대인의 혈통을 통해서 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4:22이어서 예수님은 그 여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여인의 관심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어디서 예배 드려야 하는 가에 있었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여인은 예배를 단순히 모이는 장소나 의식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경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장소가 어디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순서와 절차를 밟아 예배하느냐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전통에 묶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 자신으로 행복해지면 그 자체가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를 일컬어서 신령한 예배라고 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이런 점에서 이 여인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 영은 하나님과 깊은 영교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이름을 찬미하려는 영혼의 간절함을 그 여인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신은 먼 거리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예배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심령은 고침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시면서 동시에 죄 문제, 종교적인 문제,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문제 등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여자 스스로는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4:25여인은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는 그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하였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그러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이제 여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여인의 영안이 열렸습니다.
여인은 유대 청년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을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그의 심령을 가득히 채우는 생수가 되어 솟아오르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여인을 둘러싼 캄캄한 어둠이 물러가고 지금까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은 굴러가고 없어졌습니다. 죄의 쇠사슬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환희와 해방감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부끄러움은 사라졌습니다. 남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더 이상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왜 우물에 왔는지 조차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메시아를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이 여인은 구원을 받은 사람일뿐 아니라 그 마음의 병까지 치유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틀림이 없는데 마음의 병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생각도 예전 그대로고 성격도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으며, 행동도 다른 사람들 보기에 예수 믿는 사람처럼 보여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는 믿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을 느끼고,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과 미움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죄를 끊어버리지 못해서 정욕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십년 전에 받은 상처 때문에 아직도 고통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수가성 여인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죄인이라고 고백은 하지만, 실은 그 죄의식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심령의 병을 고침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돌덩이 같은 심령을 가지고는 마음의 병이 치료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하더라도 잘못을 항상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사람 또한 심령의 병을 고침받지 못합니다.
분명히 구원받은 것은 틀림없는데,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의문 부호를 달아놓고 의심하고 갈등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 당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문제, 갈등에 대해서 해답을 주시도록 기회를 드리십시오. 그래야만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예배 시간에 사람만 눈에 들어오고, 인간의 소리만 귀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나의 영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는데 습관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심령의 병을 고침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광의 주님을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내 영이 영과 진리로 그 분 앞에 엎드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기 때문에 심령의 병이 치료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 수가성 여인처럼 한 순간에 마음의 병까지 고침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믿자마자 놀라운 축복을 누리지만, 어떤 사람은 마음의 병을 치료받는 데 5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임종 시에 마음이 고침 받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마음이 병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틀림이 없는데 마음의 병을 고침 받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엡4:17다시 말하면 안 믿는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보면 에베소 교인들은 거짓말, 도둑질, 음담패설, 더러운 말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훼방하고 교회 안에서 수군거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서로 상처를 주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심령에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병이 들었기 때문에 생각이나 성격이 뒤틀리게 되고 정서가 불안합니다. 남을 해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너는 이제 구원받기는 틀렸으니 내 앞에서 사라져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엡4:25이하를"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이것은 거듭나서 구원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이 무슨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까? 마음의 병을 고치라는 뜻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에베소 교인들이 가졌던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마음의 병은 여전히 치료받지 못하고 있고, 예수는 믿는데 내 마음에 생수가 솟아나지 않는다면 병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자각을 가져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의심을 버리고 생수되신 주님을 마십시다. 영과 진리로 예배함으로 예수님을 생수로 마십시다. 오직 그분만을 예배하고 사모함으로 생수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십시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내 안에 퍼지면 병든 내 마음이 치유를 받습니다.
불안합니까? 두렵습니까? 죄책감이 짓누릅니까? 미운 사람들이 있습니까? 사람 만나기가 싫습니까? 기쁨이 없습니까? 감사가 사라졌습니까? 죽고 싶습니까? 이 모든 것은 다 마음의 병으로부터 오는 나쁜 것들입니다. 치료 받아야 합니다. 생수 되신 주님이 내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는 샘물이 되면 이 모든 마음의 병은 멀리 달아납니다. 그러면 수가성 여인처럼 동네로 뛰어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주님 앞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넘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