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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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4:21

이 산은 그리심 산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던 산입니다. 한편 유대인들이 예배드리던 곳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예배 장소 문제가 중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신12:13-14

하나님은 아무 곳에서나 예배를 드리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다 백성의 죄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것이 바로 산당 예배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18:3-4

북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이유는 여로보암의 죄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왕상14:16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입니까?

"(여로보암이 생각하기를)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왕상12:27-33

여로보암의 죄는 3가지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 드리러 가지 못하게 하려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제사 드리게 한 것과, 제사장은 반드시 레위 자손이어야 하는데,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은 것과,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 특히 초막절을 자기 마음대로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어 여로보암의 죄를 지적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이 죄가 되어 여로보암의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선지자를 보내어 죄를 지적해 주신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왕상13:33-34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인 선지자로 여겼으므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오랜 논쟁거리가 되어 왔던 예배 장소에 관하여 예수님께 답변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예배 장소에 대해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아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장차 때가 이르면 예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예배 장소보다는 예배 대상을 바로 알고 예배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는 원래 텔레비전을 별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가를 잘 몰라서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있을 때 하루는 임동진 장로님이 간증 강사로 오셨는데, 하필이면 그날 제가 강사를 소개할 사회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임동진 장로님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임 장로님이 제게 오셨는데 사회자인 제가 못 알아본 것입니다. 사회에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어야 할 사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유명 인사에 대해 무식해도 이렇게 실례가 되는데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이것만큼 무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식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유명인사를 잘 모르는 것과 영이신 하나님을 잘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에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예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29:2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천천과 만만의 천사들이 둘러서서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계5:12

종교 개혁자 루터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는 반드시 그에게 예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막연한 신 의식만 가지고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예배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을 구비해야 합니다.

요3장에서 예수님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된다 (must)는 강한 조동사를 사용하여 말씀하신 몇 구절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거듭나야 하겠다 (7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4) 말씀인데 이것은 “반드시 들려야 한다” 즉, 예수님이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예배자의 전제 조건이란 첫째는 중생이요, 둘째는 죄 사함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는 어떤 자여야 합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거듭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인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으로부터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장대에 단 것처럼 자기 외아들을 십자가에 높이 매달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중생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죄 사함 받은 확신이 부족한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참 예배를 드리기 원하시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옷자락에 매달리십시오.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나폴레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내 방에 소크라테스가 들어온다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할 것이다. 그러나 내 방에 예수님의 들어오신다면 나는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높이고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해야 할까요? 바른 예배는 어떤 것입니까? 우선 먼저 예배하는 대상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요사이 예배가 많이 변질된 것 같습니다. 대상이 바뀐 예배가 많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19세기 중엽에 헨리 워드 비처라고 하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유명한 설교자였습니다. 그의 누이동생은 미국 노예의 참혹상을 폭로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쓴 스토우 부인이었습니다.

헨리 워드 비처 목사는 당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노예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당시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악들을 사정없이 폭로하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용감한 설교자였습니다.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 밖에서 장시간 기다려야할 때도 있었습니다. 요사이처럼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설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설교 시간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당연히 헨리 비치 목사님이 강단에 설 줄 알았는데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외부 강사 목사님이 강단에 선 것입니다. 금방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청중들 가운데 얼마의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외부 강사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헨리 비치 목사를 예배하기 위해서 오신 분들은 지금 다 나가십시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오신 분들은 그 자리에 앉으십시오.”

이 말에 나가던 자들이 가책을 받고 대부분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간 사람은 소수의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곰곰이 반성해야 할 구석은 없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입니까? 설교를 듣기 위해서입니까? 물론 두 가지가 다 목적입니다.

그러나 설교만이 목적이요 대상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다면 나무랄 것이 못됩니다. 신앙생활을 수십년 한 사람들이 설교가 예배를 드리는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설교는 예배의 한 요소입니다. 설교를 예배 자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유명한 설교자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자를 보고 예배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청중들이 그와 같은 의식에 젖어 있는 이상 하나님은 영광 받지 못하십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란 뜻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예배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을 우상숭배를 그렇게 선호했을까요? 영이신 하나님보다 보이는 우상이 훨씬 예배하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위험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도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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