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4:13-18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라는 말씀에서 이 물은 어떤 물입니까? 그들의 조상 야곱이 팠던 우물입니다. 2,00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마르지 않고 솟아났던 우물입니다. 온 사마리아 사람들과 가축들의 목마름을 해결했던 우물입니다. 이 우물의 특징은 마셔도 다시 목마른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는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조상들이 팠던 우물의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알아듣기 쉬운 말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물은 조상들이 마신 물과 달라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그렇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들으면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모릅니다. 이런 걸타고르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타고르는 하나님과 가깝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실체가 잡힙니다. 2천년 전에 죽은 예수를 어찌 만날 수 있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됩니다.
내가 주는 물은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하니하리라라는 말에 이 여자가 빠져듭니다.
이 말씀에서 생수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생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가서 퍼오면 됩니다. 그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솟아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7:37-39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 배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얻을 수도 없는 환경을 초월한 감사와 기쁨의 생수가 흘러나와 이 생수를 마신 자마다 목마름을 느끼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그 배에서부터 생수가 넘쳐 흘렸던 사도 바울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도 기도하고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혔지만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첫째, 생명수는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둘째,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공짜로 누구든지 제한 없이 주십니다.
셋째,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샘물은 계속 솟구쳐 나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사12:3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점점 빨려 들어갔습니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매일 인적 없는 대낮에 물을 길어다가 먹어야 했던 사마리아 여인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 말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마시는 물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늘 갈증을 느끼는 그녀의 공허한 삶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이 목마릅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아 늘 갈증을 느낍니다. 그리고 삶이 고통입니다. 수가성의 여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인생이 목말랐고 허무했으며 삶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자를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지성인만 환영한 게 아니라,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사랑과 존경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똑같이 환영하고 축복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생수를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바로 생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간혹 우리는 다른 것은 몰라도 제발 그 말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 이 여인에게 남편 문제는 숨기고 싶은 부분이었을 겁니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생수를 주시는 것과 이 여자의 남편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보증인이 필요하기라도 하단 말씀입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4:17-18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 것은, 불꽃같은 눈으로 이 여인의 죄를 보시고, 그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결사적으로 자기의 죄를 가려보려고 합니다. 남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남편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사실에 불과합니다.
남편이 없다니요?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는 말로 들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정욕을 따라 지금까지 방탕하게 살아온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네 말이 맞다. 지금까지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은 딴 남자와 살고 있으니 남편이 없다는 네 말이 맞다 -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예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의 여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이미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에 대해 들은 얘기도 없지만 과거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과거는 물론, 미래까지 다 아시는 분입니다. 만나서 얘기 듣고 아시는 게 아니라 만나지 않고 얘기 듣지 않아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고백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1:47-48"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바리새인들의 생각, 이 사람이 신성모독이로다)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9:4-8"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눅6:7-8누군가 나의 과거와 마음속 생각까지도 다 아신다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자신의 전부를 알고 있다는 데 부끄럽고 겁이 날 겁니다. 한편 정반대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안심과 위로가 올 겁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 숨길 것이 없어 편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감추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에게 감춘다는 것은 속 보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나를 모르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다 아시고 사랑하신다면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다 아시고 만나주시고 친절히 대해주시면 충격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 아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굉장히 충격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하신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그녀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녀의 죄악이 그녀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를 맛보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뚫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뜻을 저버리고 내 뜻대로 내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몸부림치며 살아온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까지 하나님 없이 정욕적으로 매달려 왔던 그것을 내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를 소유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죄입니다. 죄가 우리로 하여금 계속 목마른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잠자고 있는 이 여인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피한 줄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졌습니다. 부끄러움도 없고, 창피한 것도 없습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양심의 무감각이 하나님의 은혜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 병들고 잠자는 양심이 잠을 깨지 않는 한 참된 행복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요즘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거짓말하다가 들켰을 때 얼굴이 붉어집니까? 아니면 아예 당당하게 내어놓고 변명하면서 더 크게 떠들어댑니까? 감각이 없는 양심의 잠을 깨워야 합니다. 이제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내어 놓고야 마실 것입니다. 양심이 병들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 섰으면서도 ‘제게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우리의 작은 잘못을 지적할 때 그것은 너무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그것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긴 나의 죄의 명세서를 들고 계십니다.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님, 너무나도 큰 죄의 목록이 주님의 손에 있나이다. 할 수만 있으면 감추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누가 감히 주님 앞에서 죄를 감출 수 있겠습니까? 지금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간구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터집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당한 그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생수가 터집니다.
죄의 고백과 함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혜의 생수가 우리 안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척박한 삶이 기름지게 변합니다. 목마른 삶이 기쁨이 넘치는, 은혜가 풍성한 삶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이 그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앞에 용서를 간구합시다. 우리의 메마른 눈에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눈물이 맺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이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무슨 답답한 일을 만나도 망하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망해도 이 생수를 마신 자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