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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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7-14

우리는 요한복음 3장을 통해 유대인의 고급 관리이며 지성인이자, 존경받는 종교인 니고데모를 소개받았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한 사람을 만나주십니다. 이 사람은 니고데모와 정반대로 험한 인생을 살아온 여인입니다. 니고데모와 이 여인은 모든 면에서 천양지차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갈 만한 환경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그녀를 찾아가십니다.

잠깐 비교해 보겠습니다. 니고데모는 존경받는 유대인입니다. 이 여인은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입니다. 니고데모가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었다면, 여인은 종교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관료였고 당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니고데모는 많은 특권을 받아 누리는 남성의 신분이었고, 이 여인은 많은 여자들처럼 아무 혜택 받지 못하는 여성의 신분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올 만큼 용기와 영적 갈급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사람을 피해 대낮에 물을 길러 우물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만나 거듭나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고 싶다󰡓며 선물을 가지고 찾아가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람 모두 만나주셨고 동시에 두 사람은 예수님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분이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힘이 없고, 도망가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을 들고 직접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여인의 만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만나주실 때 획일적이 아니라 각 개인의 형편에 맞추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수준에 맞게 찾아오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김 받고 인정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렇지 않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인기가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을 찾아 가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19:10

잃어버린 자는 잊혀진 자입니다. 인생이 파산된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고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의 영혼을 찾아서 이 땅에 오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만나주십니다. 예를 들면 나라의 고급 관리, 지성인, 성숙한 신앙인 니고데모를 만나서는 거듭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을 만나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는 화 있을진저, 너희가 이렇게 살면 저주를 받는다 고 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율법도 도덕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삭개오에게는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에게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눈을 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는 간음의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며 위로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적용하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의 필요대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복하시면서 구원의 복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배워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상대편의 수준에 맞춰 가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분만큼 낮아지셔서 친구가 되시고 위로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수가 마을 여인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과 경쟁을 하지 않으시려고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시던 중에 사마리아라고 하는 지역을 통과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수가라는 마을에 들러 야곱의 우물이라는 곳에서 쉬시다가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피곤하셔서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셨는데 그 시간이 여섯시쯤 되었습니다. 우리 시각으로 낮 12시, 정오입니다. 이때 한 여인이 물동이를 들고 나타납니다. 중동에서 낮 12시의 태양을 아십니까? 이때는 너무 더워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을 길러 우물에 가는 것도 선선한 아침이나 저녁 시간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우물에 왔습니다. 그 곳에는 예수님과 여인뿐입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사러 동네에 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떳떳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기다리다가 만나 주셨습니다. 아무도 만나주지 않을 때 개인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인격을 존중하여 주시고 부드럽게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버림받은 여자, 인생이 목마른 여자, 삶의 의미와 희망을 잃은 여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어서 아무도 다니지 않는 정오에 물을 길러 온 여자를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정중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화법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우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에 대해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미 다 아시고 만나주십니다. 다른 사람은 속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속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예수님을 모릅니다. 다만 유대인 남자가 멸시 당하는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말을 걸어줘 충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한 그릇을 줄 수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지식이 있거나 탁월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아가서 구원을 요청할 만큼 종교적, 도덕적으로 성숙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상대할 만큼 높은 신분도 아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지금 예수께서 우리에게 물 한 그릇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닫힌 마음을 열어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 드리는 은혜가 이 시간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여행 중에 피곤하여 우물가에서 쉬고 계실 때, 이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서로 약속했거나 계획 된 게 아닙니다. 때로 우리에게 있어 우연이란 것이 하나님께는 필연입니다. 이 여인은 물을 길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한 첫 말씀이 󰡒물을 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것이 여인의 첫 번째 반응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반응에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에 대한 해묵은 편견입니다. 오랫동안 무시당한 사마리아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상처입니다. 우리도 그런 본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다른 하나는 여인에게는 남자에 대한 편견과 상처가 있었을 겁니다. 여인은󰡐남자는 다 도둑놈이다󰡑라는 마음 깊은 배신감과 불신으로 비뚤어진 남성관을 형성했을 겁니다.

여인이 가진 두 가지 편견은 예수님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런 반응을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이 여인은 자신을 몰랐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예수님의 정중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천한 여자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과 애정으로 정중하고 겸손하게 만나주십니다. 또 예수님은 여인에게 충고하거나 설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충고하고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자신의 수준에 맞추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의 수준으로 낮추십니다. 이 여인은 지적,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아니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따뜻한 마음으로 대낮에 물 길러 온 여인을 대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여인의 눈높이에서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그 사람의 눈높이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충고하거나 야단치거나 설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10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알아듣기 쉽게 구원을 설명하십니다. 니고데모에게는󰡐거듭나라󰡑고 알아듣기 어렵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 󰡐거듭남󰡑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쉽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 예정, 섭리라는 말은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은 알아듣지만, 이 여인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이라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알아듣기 쉽게 접근하십니다.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메시아나 구원자라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여인의 마음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방법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일 물 좀 달라 하는 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비밀은 구하는 데 있습니다. 구하다는 말은 찾다, 두드리다, 바라보다, 소망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님에 대해 눈을 떠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바라보고, 소망한다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하는 것은 약속입니다.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내게 주었으리라.󰡓

생수는 우물물과 다릅니다. 이 여인이 생각한 것은 물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생수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네게 줄 수 있다.󰡓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생수가 있다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곳까지 물 길러 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생수에 대해 듣고 순간적으로 기뻤지만, 세상에 그런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여인은 이 야곱의 우물을 최고의 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물은 수 천년 동안 마르지 않은 우물입니다. 이 여자는 이 우물이 있는 한은 목마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안정된 직장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줄 것이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돈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남편이 나의 행복을 채워줄 것이요, 어떤 사람은 나의 자녀가 나의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이스라엘 백성의 두 가지 악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나름대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분은 하나님인데, 그들은 이것을 믿지 못하니까 불안해서 앗수르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하나님인데, 이들은 또 다른 많은 병거와 말을 사들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터진 웅덩이여서 물이 고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망할 것 같으니까 자기 나름대로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무엇인가 해 놓고야 맙니다.

우리가 시간만 나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좀 든든한 웅덩이 하나 장만할 것인가? 그래서 그런 웅덩이를 장만한 자는 뻐기면서 다닙니다. 그러나 그런 웅덩이가 없는 사람은 웅덩이를 파고자 온 힘을 다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죄냐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지금 이 지위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따질지 모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지위와 명예,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힘으로 여기는 것이 잘못입니다. 모든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과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높아져도, 아무리 많은 물질을 가져도, 많은 학식을 쌓았어도,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잘 보십시오. 성경을 읽어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알 것을 다 알고 있는 여인입니다. 예배의 문제를 들먹이고, 메시야가 와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우물의 역사적인 배경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듣기는 들어서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목마른 현대인의 모습과 다른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다 압니다. 그런데 여전히 목은 마릅니다. 그럴 때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목마름을 어떻게 해결해 주셨는지 그것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하고, 목마름을 해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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