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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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4:1-4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그다지 멀지 않은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사역을 하니까 바리새인들은 이 두 사람을 어떻게든지 헐뜯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로 가는 사람이 요한보다 많다더라, 예수가 요한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다더라 하면서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려 했습니다. 4장 1절에 그런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4:1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라는 말 속에는, 그들이 음흉한 계교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주님이 알고 계셨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경쟁심을 부추기려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문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경쟁하게 합니다. 이런 가십을 만든 사람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를 피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요한에게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가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하기로 하셨습니다.

경쟁이나 분쟁은 사탄이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위해서 항상 잘 이용하는 전략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고 비판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것은 분명히 마귀가 시험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신 겁니다. 인간의 시기와 질투와 경쟁을 피하신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시기와 질투와 경쟁심이 있습니다. 아니라고 하겠지만 가만히 보면 강한 질투, 시기심, 경쟁심에 불타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로 마음 상하고 상처받은 후 또 다른 상처를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피하셨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경쟁심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덕을 만들지 못합니다. 일은 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인간은 숫자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주시는 것이 세례 요한이 주는 것보다 많은 것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역시 사람은 숫자에 약합니다. 누가 더 인기 있는가? 누가 사람을 더 많이 모이게 하는가? 누가 회사에 더 많은 돈을 벌게 하는가? 이런 겁니다. 조용히 피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이동하십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성숙한 인격자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이나 정의라는 이름으로 쉽게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인생이 피어나지 못하게 기를 꺾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상처 주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약자에게도 사랑으로 만나시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주십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4:4

‘하겠는지라’는 꼭 해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통과해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이 그런 결심을 하셨을까요? 사마리아로 가는 길이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인가요?

당시 예루살렘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요단강을 건너서 빙 둘러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가운데를 질러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가운데로 질러가는 길은 빨라서 좋았지만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리는 땅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지역감정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편하면 피해갑니다.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합니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데 사마리아로 통과하는 것은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싫으면 멀어도 돌아가는 게 인간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그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습니다.

선교란 무엇입니까? 가기 싫은 땅에 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게 선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는 길입니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갈등은 구약의 앗수르 때부터 시작됩니다. 솔로몬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한 때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왕이 된 이후, 계속 우상숭배를 하여, 결국 앗수르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데려가기도 하고, 다른 민족을 이스라엘 땅에 이주시켜 살게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앗수르와 유대인의 혼혈로 생긴 민족이 바로 사마리아인입니다. 이렇게 되어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의 순수 혈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순수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에게 혼혈은 매우 치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잡종으로 여겼고, 사생아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깔보고 무시하고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마리아인들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혼혈의 문제뿐 아니라 이방 종교의 풍습이 들어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편이나 예언서를 인정하지 않고 모세 오경만 받아들였습니다. 예배하는 장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예배하던 그리심 산만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혈통과 종교적인 모욕감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심각한 적대적 감정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짜고 이 성전 재건하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민족의 배신자로 여겼고, 언약의 파괴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도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더 미워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500년 넘게 서로 교류하지 않고, 상종하지 않는 역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에 대한 평판과 인식이 이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려고 결심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마음에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부득불 그 길을 가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그 목적은 다름 아닌 수가성 여인을 만나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4:34

이것은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을 구원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항상 최우선 순위로 두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세상에 오셨고, 이것을 위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최우선 순위는 무엇입니까? 혹시 나의 뜻이 아닙니까? 최우선 순위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두기로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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