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1-36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이 말을 들은 세례 요한이 열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하였는데 세례 요한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3:31

여기에서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땅에서 난 이는 세례 요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요8:23

예수님은 위에서 나신 분으로 만물 위에 계십니다.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지만, 위에서 나신 분은 하늘의 말씀을 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7

여러분, 들어서 전하는 사람은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보고 들으셨기 때문에 정확히 아십니다. 그래서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5:27-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19:8-9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철학이나 자신의 견해가 아니었습니다. 깊은 사유나 묵상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 분이 친히 보고 들은 것입니다.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 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께로 부터 보고 들은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랍비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하늘나라에 계실 때에 직접 보고 들어서 아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말씀을 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증거를 받는 자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제법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야, 정말 대단한 말씀이야. 나는 다른 데서 이런 설교를 들은 일이 없어. 그 가르치시는 것이 귄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아’ 그리고는 끝입니다. 그러나 그의 증거를 받아들인다면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 증거를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요3:33

현대인의 성경 : 그분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누구든지 그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런 고백이 없는 자는 진정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증거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 라는 고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온전히 참되시며 다른 모든 것은 다 거짓되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모든 삶이 전적으로 거짓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우리가 옳은 줄 알고 살았을 것입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해도 이렇게 심각한지는 몰랐을 것입니다. 수양을 하고, 뭔가 노력을 하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히 파산했으며, 우리는 완전히 망해버린 자이며 철저하게 버림받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철저하게 썩어있기 때문에 선한 것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듣고 흘러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이라고 화답해야 합니다. 동의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나의 존재는 완전히 파멸 당한 상태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전혀 가망성이라고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되시며,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을 믿고 따르겠다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이런 신앙 고백 없이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일시적으로 달콤한 위안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 설교하면 표정이 변하면서 떠납니다.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고 믿는 다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2가지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1거울로서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면 배울수록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고, 서기관들이 그러했습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하는데, 타인을 달아보고, 재어보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말씀의 용도를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말씀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의 삶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절망, 전적인 무능과 타락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적인 절망이 있어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 신앙의 감동이 없는지 아십니까? 철저한 절망이 없었기 때문에, 은혜를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창의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문을 통하여 바깥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원리에 비추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세례 요한이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한량 없이 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씀하시고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성주의자, 경험주의자, 과학주의자들은 이 비밀을 모릅니다. 어떻게 예수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체험은 성령 체험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성령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건 예수를 잘 모른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적, 도덕적, 윤리적, 역사적인 예수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보내신 예수님에게 무제한으로 성령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선지자들이나 영적 지도자들은 성령을 제한적으로 받는 반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증거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아직도 (최후의 만찬석에서 하신 말씀,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가르치셨지만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7

우리가 진정한 성도가 되고 교회가 참된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동적인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여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하며,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성령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요3:35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주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 모두가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주시라고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셔서 천하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셔서 심판주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5:22-23

그러므로 사느냐 죽느냐가 예수님의 이름을 달려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예수님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나의 인생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를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영생은 감추어지고 대신 인생의 본질인 심판과 진노가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진노와 심판을 주시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가 진노와 심판에 있는 겁니다. 성경에 진노가 쌓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인간은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구름이 어느 정도 쌓이면 비가 떨어집니다. 인간이 하는 짓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쌓아 진노의 양이 차면 어느 순간 떨어지는 겁니다. 이게 심판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8-10

이 말씀에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건 사람이 대답한 게 아니라 성령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대답을 하게 됩니다. 󰡐아멘󰡑이라고 소리가 되어 나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했습니까? 우리의 죄인됨을 고백하십니까?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만이 나의 죄를 속할 수 있음을 믿습니까? 성령의 힘으로만 새로워질 수 있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신앙을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용서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머리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다 사해 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풍성한 은혜와 기쁨, 자유와 평강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날마다 체험하는,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와같이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해 볼 때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았고 자신의 분수를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은 참 하나님이시오, 온 우주의 왕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높아지고, 예수님이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일이라면 자기는 얼마든지 낮아지고 작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2021년 10월 31일 오전 8:46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