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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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3:27-30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요3:26에 대한 세례 요한의 반응입니다.

"그(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3:26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이 자신들의 보고를 들으면 격분하고 시기심과 질투심에 불타 모종의 조취를 취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시기하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님의 성공적인 사역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세례 요한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하고 계신 사역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일 것이라고 믿고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나보다 더 주목을 받고 인기 있고 칭찬을 받는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나는 나대로 쓰실 것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비난하고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세례 요한처럼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높여주고 양보하는 아름다운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세례 요한처럼 무슨 일에든지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살피며 내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있는가, 인정받고 있지 못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요3:28

무슨 말입니까? 그가 평소에 분명히 밝힌 사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1:19-23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31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하나님의 보냄을 받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 분수를 넘는 일에는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세례 요한은 마음을 조금만 잘못 먹으면 자신을 메시아로 착각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를 향해 메시아가 아니냐고 떠보는 바리새인들도 더러 있었고, 그를 메시아라고 믿는 자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위기감을 느낀 그는 새삼 목소리를 높여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말을 자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만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누가 무슨 말로 흔들어도 하나님이 서 있으라고 명령하신 그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낮으냐 높으냐,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력을 보아도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섰습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되도록 먼지를 뒤집어쓰며 대패질을 하던 목수였지만, 그는 20년이 넘도록 광야에서 거룩한 수도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매력을 줄 수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분수 이상의 것을 욕심 부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잊혀질지라도, 자신의 모습이 작아 보인다 할지라도, 제자들이 자기 곁을 떠날지라도 그는 섭섭해 하거나 원망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매우 큰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분수를 잘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사람은 소인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모가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이나 역할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든지 받는 것만큼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분수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야말로 지혜 중에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을 세상에서 가장 큰 자라고 극찬하신 이유를 29절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3:29

자기를 몹시 초라하게 만든 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기쁨이 충만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자기의 기쁨을 잔칫집의 신랑 친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에 의하며,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의 친구의 역할을 단순한 하객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과 신부 사이를 중매하고, 신부를 신랑에게 인도하며, 신랑의 들러리로 서고, 결혼 잔치를 주관하는 등 참으로 중요하고도 책임이 따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 잔치가 끝나고 나면 그의 임무도 끝나므로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랑이 나타난 자리에서는 누구 하나 그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랑의 친구는 자신이 결혼을 주선하고 도운 일에 대해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바로 이러한 기쁨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세례 요한은 원래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펄떡펄떡 뛰면서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가 찾아와 자기 어머니와 인사를 나눌 때 그는 배 속에서 기뻐서 뛰고 있었습니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눅1:44

태중에서부터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기뻐뛰던 그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요한처럼 예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큰 자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명예보다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큰 자로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을 큰 자라고 칭찬하신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30

영어 번역으로 읽으면 더 실감이 납니다.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우리는 이 한마디에서 세례 요한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의 소망입니까? 예수님만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서, 영원히 경배 받으실 하나님으로서 높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종종 증거하는 자가 잘못된 모습으로 드러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자 자신을 증거해서 목표를 잃어버리고 헤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예수님만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영광만이 나타나는 교회가 최고의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목적도 예수님만 드러내어야 합니다. 개인이 나타나면 안됩니다. 개인보다 교회가 나타나야 합니다. 부서가 나타나면 안됩니다. 부서보다는 교회가 나타나고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내 부서가 죽고, 우리 교회가 죽고 예수님만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 두 종류의 신앙인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예수의 이름을 빌려 자기가 흥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복도 받고 소원 성취도 해서 편하게 사는 것이 신앙 생활하는 목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요한처럼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기가 쇠하기를 소원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작은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수천만원도 아깝지 않게 내 놓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푼돈도 아까워한다면 그 사람은 소인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여가 활용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주님 나라를 위해서는 시간과 물질 드리는 것이 아깝다면 그 사람도 소인입니다.

세례 요한을 이야기할 때 마11:11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주님은 세례 요한이 이 세상에서는 가장 큰 자이지만 천국에서는 그보다 더 큰 자들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에는 세상에 있으면서 주님을 높이기 위해 자기는 최대한 낮아지고 하나님 나라가 흥하기 위해 자기를 철저히 쇠하여진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들의 풀과 같고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무리 황홀해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금방 말라서 바람에 날리는 들꽃과 같고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허무한 인생이 역전되어 엄청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는 심히 작아 보이겠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로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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